정치는 생물(生物)이다. 생물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생명을 가지고 생활현상을 영위하는 물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말이 흘러가는 물이다. 개울물이나 강물은 흐르다가 웅덩이나 소(沼)도 만들고 급경사를 만나면 폭포수를 만든다. 그런가 하면 물방아도 돌리고 수력발전도 한다. 그래서 정치나 권력에 대해서 하는 말들이 있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한다. 권력의 무상함을 말할 때 흔히들 쓴다.요즘 정치풍토가 그렇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5개월째고 지방선거가 끝난 지 두 달여가 되고 새 대통령이 일을 시
부역(賦役)이란 사전적 의미로 “국가나 공공단체가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지우는 노역”이다. 홍천읍 모 외곽부락에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내용이 마을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부역을 나오라고 쓰여 있다. 부역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국가권력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강제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독재국가나 제국주의시대에나 있었던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그런 표현의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 있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착잡하거나 불쾌하게 하고 있다. 이런 아주 소소한 것 하나가 모이고 쌓여 그 나라의 민도와 국가발전의 정체성이 된
자칫 본인이 본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 중 제 자랑을 하면 팔불출에 들어간다고 욕을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홍보시대다. 자기의 얘기를 떳떳하게 해야 한다. 서양 속담에 “귀신도 말을 해야 안다”고 했다. 나의 과거는 가난하고 나약하고 보잘 것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현존하고 있는 지인들도 상당수가 그러했다.한국은 5~60년대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의 필리핀 북한 태국 등등이 우리보다 몇 배 잘살아 우리에게 원조도 해줬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완전 그 반대의 세상으로 세계 10대 무역국이다.
전호에서 나의 지나온 얘기를 대부분 요약 기술했다. 이번에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생각하고 겪은 주변의 이런저런 얘기를 간추려 쓰고자 한다. 필자는 퇴직 후 즉시 공인중개사 개업을 했다. 때문에 퇴직연금을 안 받았다(사실 신청을 안 했다). 중개보조원 1명과 보조직원 1명으로 3명이 홍천읍 갈마곡리에 개업을 했다. 이곳에서 몇 년 있다가 상오안리로 이전하고 그곳에서 역시 몇 년 있다가 다시 진리로 온 후 사무실을 접었다. 총 10여 년을 운영했다. 금융인은 매월 받는 연금이 없다. 필자는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으로 기와집을 헐고 2층
요즘 TV 한국전통가요 채널에서 30여 년 전 가요무대 재방송이 자주 나오고 있다. 필자는 화면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낀다. 그 당시 애송이 신인 남녀가수가 지금은 백발의 중견 노가수가 돼 원로 대우를 받고 당시 유명가수들은 대부분 저세상 사람들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가나 재벌가 교육가 등 소위 유명인들도 세월에는 약이 없다는 것을 새삼 알고 있다.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독자들도 한번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1941년 여름 필자는 시골 소작농의 외아들로 태어났고 위로 누나 둘이 있었
현재 홍천자유총연맹(회장 이희덕)은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다. 원래 이 사단법인 단체는 홍천에서 최초로 버젓한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건물 안에 사무실도 겸했다. 그러다가 1960년 3.15부정선거 때 당시 회장(이동석 작고) 등이 정치에 연루돼서 단체 자체가 해산됐고 추후 반공청년단 사무실을 군에서 마련해 주기로 약정하고 건물은 군으로 귀속됐다.물론 형식적으로는 헌납의 형식으로 됐지만 그 당시 사회적 여건은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당시 필자가 무보수 비상근 사무국장을 일 년쯤 했기에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쓸 때 심장마비로 쓰면 제일 후한이 없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사람은 심장이 멈추면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 전 단계의 성한 사람에게 가장 슬픈 것은 바로 배고픔이다. 사지가 멀쩡한데 단지 먹을 게 없어서 배를 곯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지구상 200여 개가 넘는 나라에서 식량부족으로 매일 아사하는 인구가 수만 명이라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안타까운 일이다.우리나라도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 때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은 사람이 많았다. 특히 노약자와 어린이가 많았다고 하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식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제주 연수관광에 대해 쓰고자 한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섬으로 이뤄진 특별자치도다. 본섬을 기준으로 우도와 마라도 등의 섬들을 끼고 있다. 기후 또한 온화해서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그리 많지 않다. 제주도에서도 남쪽인 서귀포시는 더욱 따뜻하다. 물론 한라산 정상은 눈비가 많이 오고 기온도 많이 내려간다.제주도는 원래 3무 3다로 유명하다. 첫째 도적이 없고 울타리(대문)가 없고 거지가 없다고 했다. 3다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제주도민 중 총인구
지난달 20일 2박3일 동안 MG홍천새마을금고 제주도 연수를 다녀왔다. 새마을금고 임원들과 관리책임자 일행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횡성터미널 원주공항에 도착해 저가항공사인 진에어의 중형비행기를 타고 11시 10분에 이륙해 55분 동안 비행 후 제주국제공항에 내렸다. 탑승정원 189명이 만석으로 오전과 오후에 하루 두 차례씩 제주도를 왕래한다.필자가 제주도 여행을 한 것은 4년 전에 다녀왔고 최근에는 간 적이 없다. 특히 코로나19 전염병 창궐로 2년 동안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입고 이제 겨우 여행객이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7월 1일자로 민선8기가 출범했다. 군수와 군의회의 임기가 새로 시작돼 향후 4년간 7만여 군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수고해줄 것을 먼저 당부한다. 지난 7기 공직자들도 모두 수고들 많이 하셨다. 이제 자기의 생활을 갖고 주민의 일원으로서 새 집행부를 돕고 자문할 것은 자문하면서 일상의 군민으로 돌아들 갔다.특히 우리 군의 경우 6월 30일자로 전임군수가 떠났고 부군수와 국장 2명(행정 경제)이 퇴직하게 됐다. 군청 고위직 공직자가 한꺼번에 이동된 것이다. 2022년 7월 1일 오후 2시 홍천문화예술회관에서는 신임군수
홍천읍내에서 차로 10분 내외 도보로 1시간 내외에 작은 유원지가 많았다. 지금은 도로확장과 개발 등에 밀려 그 자취마저 찾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이 소규모 유원지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먼저 홍천읍 삼마치1리 유원지다. 이곳엔 너럭바위가 깔려있고 폭포도 있었다. 1960년대에는 이곳에 봄부터 가을까지 홍천읍민은 물론 외지인까지 많이 놀러왔다. 너럭바위 밑 폭포는 높지는 않지만 생김새가 멋있고 가뭄에도 수원이 끊이지 않았다.또 그 너럭바위에는 물이 흘러서 여름에는 발을 담그고 도시락으로 식사를 할 수 있어 즐겨 찾던 곳이다. 이곳에는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을 맞은 지 5년 만이다. 당시 필자는 홍천군 영귀미면과 횡성군 공근면 접경지에서 살았다. 초등학교(현 초등학교) 3년생 10살이었다. 그 시절에는 모내기 농사가 지금보다 한 달 정도 늦었다. 6월 20일경 학교를 일찍 끝낸 후 모내기 돕기(모종 나르기)를 했다. 어른들 10여 명이 나란히 서서 손으로 모를 심을 때 묘판에서 뽑은 묘 묶음을 날라다 모 심는 일꾼들 뒤에 놓아주는 일종의 심부름꾼이었다. 그리고 점심은 근사하게 들밥을 먹었다.그날도 논에다
지난 5월 15일 필자는 동학농민항쟁혁명학회에서 주관한 전국 청소년학생백일장 글짓기 심사를 한바 있다. 홍천문인협회(회장 안원찬) 회원 자격으로 필자를 위시한 심사위원 세 명은 이미 주관처에서 초심을 거친 작품 음문(시)과 산문 50여 편을 살폈다. 전국 공모인 만큼 각 지역에서 고루 응모했다.내용은 ‘밥’에 대한 주제로 자유의사로 내용을 작성했다. 필자는 산문 쪽을 심사했는데 대체적으로 내용이 우수했다. 학생들 작품으로 초등은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눴고 중·고등학생은 하나로 묶어서 심사했다. 이번 백일장은 구한말인 약 백여 년 전
유난히도 치열했던 제8대 지방선거가 끝났다. 당선자는 당선의 기쁨을 낙선자는 패배의 쓰라림을 맛봤다. 어차피 선거는 당선자와 낙선자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선거기간 중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필자는 너 댓 번의 선거에 임한바 있다.첫 번째는 30여 년 전 농협조합장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당시 군농협에서 퇴직하고 즉시 모 지역 조합장에 출마했다가 멋있게 낙방거사가 됐다. 그 다음 역시 모 금융기관 이사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 다음은 문화관계단체장에 두 번이나 출마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그 후 두 번의 기회가 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올해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선거운동이 치열한 것 같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이뤄지는 지방의원선거에 국회의원보궐선거까지 겹치니 제일 많이 선거를 하는 곳은 8장의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게 된다. 우리 홍천지역은 군의원 도의원 군수 도지사 교육감 비례대표 정당까지 7번을 찍어야 한다.며칠 전 각 후보자들의 선거 공보물을 받았다. 물량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훌쩍 넘긴 것도 있다. 지난 27일과 28일에는 사전투표가 있었다. 대통령선거 후 실시되는 지방선거로 또 한 번 세상이 떠들썩하
요즘 부자(父子)가 많이 줄고 있다. 반면 부녀(父女)는 늘고 있다. 아들선호시대가 가고 남녀 하나만 두는 가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득음이 같은 한글의 부자(富者)도 있다. 재력이 넉넉한 사람들을 말한다.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지인 한사람이 필자에게 “강형은 부자야?” 했다. 딸 둘에 아들 하나니 분명 부자다. 그 지인은 그런 뜻의 부자가 아니고 재력이 많지 않느냐 하는 뜻의 부자라고 말한 것 같다.그러고 보니 내가 갖고 있는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내 스스로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전답이 있고 집이 있다. 대지 180여 평의
우리는 학창시절이나 사회생활에 있어 각종 클럽(단체) 활동을 한다. 초·중·고등학교 때에는 학급 내의 특별활동에서부터 걸스카우트와 보이스카우트 또는 YMCA 둥 자율 클럽 활동이 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성장해서는 많은 국제클럽이나 국내 모임에 참여한다. 그 외에도 각종 취미활동과 기본적인 모임이 수두룩하다.필자의 경우만 해도 한창 많을 때에는 스무 개가 훨씬 넘는 단체 활동을 했다. 먼저 직장에 있을 때 입행동기모임을 비롯해 문학회 동창회(초·중·고) 테니스회 동갑내기(신사)회 부부동반 한마음회 JC특우회 홍천향
우리나라에는 약 270여개의 성씨가 있다고 한다. 5천2백만여 명 인구의 성씨가 이 속에 다 포함돼있다. 한번 만들어진 성은 그 종족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지고 새로운 성씨도 만들어진다. 다문화가족이 늘어나고 민법에 의해 자녀가 엄마의 성씨를 따를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딴 합성 성씨까지 이름에 붙여지는 세상이다.270여개의 성씨 중 김·이·박·최·정씨가 제일 많고 그 다음 강 씨나 안 씨 등이 많다. 필자의 성씨인 강(姜)씨는 전국적으로 130여만 명으로 본은 진주로 단일본이고 중간시조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말에 화장실에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고 한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치꾼은 도태시키고 정치가를 뽑아야 한다. 선거운동기간에 말만 번드레하다가 막상 당선이 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을 싹 바꾼다. 그리고 4년 뒤에는 또 나타난다. 풀뿌리정치의 기초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선거운동기간에는 군민의 머슴이 되고 어쩌고 하다가 막상 당선되면 그만이다.공약도 대부분 헛공약들이 많고 기초의원으로서의 기초가 안 된 후보들도 많다. 다행이 우리 군에는 모두 나올만한 사람들이 예비후보로 나와서 공천을 받았다. 군의원이나
며칠 전 집으로 국방부 소속 정책학 박사 연구원(예비부 육군대령)이 방문했다. 그는 육군에서 수십 년 근무 후 고급장교(대령)로 예편하고 다시 국방부 정책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전국에 있는 한국전쟁에 관한 지역연구를 한다고 했다. 이번 연구대상은 홍천지역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군부대 배치와 그에 따른 밝혀지지 앟은 얘기와 잊혀져가고 있는 전쟁에 관한 사건을 찾고 있다고 했다.알려진 사실 중 심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으로 6.25 한국전쟁 전인 49년 홍천에서는 한국군 역사상 드문 현역 국군 중대 규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