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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호 홍천강 탐사기행 102 팔봉산과 작은 남이섬 그리고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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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4.14  10: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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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노일’과 ‘남노일’이 만나 이루는 물길의 문양은 ‘수태극(水太極)’이다.
‘생곡 모두부치’에서 흘러온 물이 모이고 모여 비로소 큰 강을 이루더니 ‘금학산'을 끼고 도는 ‘남노일 고드래미’와 ‘위안터’를 감싸 안으며 수태극을 이룬 것이다.
태극은 ‘궁극의 근원’을 뜻한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 있던 우주만물의 근원이며  본체이다. 태극은 원상 속에 양과 음이 위 아래로 상대하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사멸이 있을 수 없는 영원의 상을 상징한다. 「역경」<계사전>에 ‘역에 태극이 있어 이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으며,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우주가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지기 이전 즉 음양이 대립적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우주 만상의 근원이며 인간 생명의 원천이자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한 마디로 순환하는 생명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일리’의 수태극 문양은 물과 땅이 이루는 생명의 역동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태극의 문양이 감도는 노일강을 걷는 것만으로 강을 따라 걸어온 나그네 인생의 철학적 성찰이 아닐까?
‘금학산’ 정상을 올라야 강과 산이 이루는 수태극의 역동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금학산’을 올라 수태극의 문양만을 볼 것이 아니라 수태극의 문양이 이루는 삶의 원기를 느껴야 한다. 바로 순수함과 순박함이 남아있는 노일리의 순박하고 진솔한 고향사람들의 삶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섶다리다. 이 섶다리는 ‘남노일’에서 ‘위안터’로, ‘위안터’에서 ‘북노일’을 건너는 겨울강에 놓은 다리다. 지금도 해마다 겨울이 시작되면 다리를 놓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 다리가 유일할 소통의 길이고 노일리로 잠행하는 길이었다.
최근에 다리가 놓이고 강과 산을 배경으로 펜션이 들어섰지만 그 섶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과 바람처럼 걷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잃어버린 미래를 찾는 순례의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욕심내지 않는 여행이다. 먹고 마시고 잠자리를 찾는 관광성 여행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를 이루며 그 속에서 삶의 향기를 만끽하는 것이다. 
‘노일리’는 대한민국 제일가는 견지낚시 터다. 견지낚시는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얼음이 풀리면서부터 시작되는 견지낚시는 강에 살얼음이 질 때 까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으며 해마다 홍천강에서는 견지낚시 대회가 열리고 있다.
인간은 여행을 즐기는 동물이다. 본능적 여행이 아니라 삶의 풍요로움을 위하여 멋과 맛을 찾는 여행이다. ‘홍천강은 재즈 같은 강이다’라고 했다. 언제라도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노일에서 팔봉산과 밤벌 유원지를 돌아 마곡으로 이어지는 홍천강의 물소리를 듣는다. 가끔씩‘장항리’의 잠수교에 앉아 듣기도 하지만 강가에 매어있는 내수면 어부들의 배에 몸을 싣고 듣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즐기는 재즈 같은 물소리는 ‘팔봉산 어유포리’의 물소리다. ‘팔봉산’을 돌아보고 내려와 바위 끝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물 속 깊이 잠긴 바람 한 소절이 물비늘을 털며 일어서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물소리’뿐 만아니라 ‘바람소리’도 듣는다. 
‘팔봉산(八峰山)’은 삼백여m의 여덟 봉우리가 아기자기한 조화를 이룬 나지막한 산이다. 봉우리마다 깃든 사연도 형상도 다르지만 봉우리마다 오르다보면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일상의 묵은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강원도 땅- 홍천의 팔봉산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세종 11년 기유(1429) 11월11일 (계축)일이다. 예조에서 전국의 영험한 곳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국가에서 행하는 치제의 예에 따를 것을 건의하면서-‘청하옵건대, 그 영험 여부를 분별하지 말고, 영구히 혁파하였거나 제사드리는 장소를 모르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에서 행하는 악(岳)·독(瀆)·산(山)·천(川)의 제품(祭品)의 예(例)에 따라 국고의 미곡으로 치제하게 하고, 제사 뒤에 감사가 본조에 이문(移文)하는 것으로 항식을 삼게 하소서’ - 이에  강원도에는 원주(原州)의 거슬갑산과 홍천(洪川)의 팔봉산(八峯山)을국가에서 제를 올리는 영험한 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세종 19년 정사(1437,정통 2) 3월13일 (계묘)에 예조에서 악·해·독·산천의 단묘와 신패의 제도를 상정하면서-‘홍천현(洪川縣)의 팔봉산은 사묘의 위판에 팔봉산 대왕지신(八峰山大王之神)이라고 썼는데, 청하건대, ‘대왕’ 두 글자는 삭제할 것과 또 사묘가 산 위에 있어서 대단히 험하여 오르내리기가 어려우니 청하건대, 땅을 가려서 단을 설치할 것을’-상정하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팔봉산에는 팔봉산 대왕지신(八峰山大王之神) 을 모신 사묘의 위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백여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세종실록에 대단히 험하여 오르내리기가 어렵다고 기록한 이유는 산을 오르는 데 1000m이상의 산을 오르는 만큼 힘을 쏟아야만 한다. 그런 만큼 산 정상에 오르면 희열은 강열하다. 그 희열은 팔봉의 봉우리마다 각양각색이다. 
일봉과 이봉에서 바라보는 금학산 봉우리와 수태극을 이루는 물줄기는 장관이다. 또한 팔봉산의 최고봉이자 영험이 깃든 이봉에서 태극을 이루며 흐르는 강물의 용신까지 깃든 우리나라 제일의 성역을 둘러보며 삼부인신(풍년과 가정의 화목을 주관하는 세 여신-이씨는 시어머니, 김씨는 며느리, 홍씨는 시누이라고 한다)을 모신 삼부인당(三婦人堂)에 소원을 비는 일도 산행의 즐거움이다. 
지역 사람들은 400여 년 전부터 매년 3월과 9월 보름에 당굿을 벌여왔다. 현재 팔봉산당산제는 팔봉산보살 조정순(80)씨의 주관으로 마을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안녕과 무병장수 그리고 풍년을 기원한다. 음력 3월 보름 굿이 크다. 이때는 삼부인신과 칠성신을 기리는 세 마당 굿을 한다. 이 굿을 보면 무병장수하고 복을 받으며 소원성취 한다는 전설이 있어 이 무렵에는 팔봉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봉이 ‘팔봉산대왕지신(八峰山大王之神)’사묘의 위판이 있던 곳이 아닐까 여겨진다.
소원을 빌고 눈을 들어 ‘매봉산’ 쪽을 바라보면 ‘대명비발디파크’의 스키장에서 슬로프를 타고 올라가 미끄러지는 스키어들의 모습을 보며 다음 봉우리로 발길을 옮긴다. 팔봉산행의 묘미는 4봉으로 오르는 길목의 바위굴이다. ‘해산바위’, ‘해산굴’, ‘장수굴’이라 붙여진 10m 가량의 수직 바위굴이다.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 나갈 정도의 구멍을 통과 해야만 하지만 통과하는 과정의 어려움이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하여 ‘해산굴’이라고 부르며 여러 번 빠져 나갈수록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어 일명 ‘장수굴’로도 불린다.‘해산굴’을 빠져나와 만나는 봉우리는 수반(水盤) 위에 놓인 산수경석 같이 멋지고 아름답다. ‘베틀바우(직조암)’와 ‘벽장바위’, ‘관모봉’, ‘장군봉’등 봉우리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르지만 8봉에 올라 팔봉의 능선과 함께 이어지는 강과 산맥의 어울림을 만나야 팔봉을 돌아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능선이 서면의 옛 지명인 ‘감물악’의 능선이고 그 능선 끝자락에 ‘태양산’이 있다.  
홍천군 서면을 옛날에는 ‘감물악면’이라고 했다. ‘감물악산’을 앞산으로 하고 ‘매봉산’을 뒷산으로하는‘팔봉리’는 대명스키장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현재 대명비발디파크가 들어선 곳은 ‘한치골’이다. 매봉산 줄기의 봉우리들이 북서면을 감싸안은 한치골은 비발디의 사계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멋을 살려 봄의 야생화, 여름의 계곡,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원을 즐기는 전천후 공원이 되었다. 지금은 골프장과 오션월드, 홍천강을 연계한 트래킹과 산행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개장 초기에는 홍천 남면 양덕원-화전리-백양치를 넘어가는 길과 부사원고개-역전-원소리-구만리로 이어지는 길이 유일하였으나 최근에는 양평에서 터널을 뚫고 가평 설악과 춘천 등지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함과 동시에 영서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감물악산’이 감싸고 있는 마을이 ‘반곡’이다. ‘盤谷(반곡)’은 말 그대로 팔봉산을 말하는 듯하다. 반곡은 감물악산 아래의 ‘가무름 <감물악(甘勿岳)>’ 과 ‘뒷들’, ‘망단이’, ‘서창터’, ‘태양산’ 을 어우르는 마을이다. 일찍이 들보다는 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반곡은 팔봉산 구비를 돌아 이어지는 강에 상청담불이라는 ‘신바위’와 ‘용늪’ 이 있었다.
팔봉산이 내려다보이는 ‘어유포리(魚遊浦理)’는 고기가 놀만한 곳이라 할 만큼 ‘당여울’과 ‘고부소’의 물소리와 바위가 아름다운 곳이다. 팔봉산의 건너편이면서 팔봉산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어유포에는 최충의 영정을 모신 ‘노동서원’이 있으며, ‘돌곳이말’ 뒷산의 진달래꽃이 붉게 필 때면 어유포의 물고기들도 물속의 선경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 둘러볼만하다.
감물악면(서면)의 면소재지는 ‘반곡리’다. 그러나 면까지 일을 보러 가기에 모곡에서는 너무 멀었다. 강을 돌아 산을 넘고 걷고 걸어야 했다. 
여기서도 ‘모곡’은 한참을 더 돌아가야 했다. 지금은 ‘개야’와 ‘모곡’ - ‘동막골  널미고개’를 넘어 경기도로 이어지는 길이 뚫리고, 또 ‘모곡’-’마곡’- ‘춘천 가정리 황골’로 잇는 ‘충의다리’가 놓이면서 요트와 수상스키, 겨울스키와 산행, 낚시와 재즈 같은 홍천강을 즐기는 ‘로드맵’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곡’은 ‘보리울’이다. 보리가 잘되었다고 하여 ‘버릿골’, ‘버리울’ 또는 ‘모곡(牟谷)’이라 하였다. 그러나 모곡은 한서 남궁억 선생이 무궁화를 심어 보급한 곳으로서 무궁화의 성지다. ‘숫산’과 ‘노고산’이 앞뒤로 감싸고 있는 ‘보리울(모곡)’에서 남궁억은 무궁화를 통한 한국인의 자긍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무궁화 같은 민족성 교육을 통하여 조국애를 심어 주었다. 
한서 남궁억 선생이 교육계에 입신한 것은 1895년이다. 토목국장으로 있으면서 흥화학교에서 국사 시간을 맡았던 일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국어와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후에 양양군수로 부임하면서 당시 현산학교를 세운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배화학당에 재직하면서 한글궁체를 발굴하여 한글서예의 바탕을 만들었고, 꽃핀 무궁화 열세 송이로 조선 13도를 표시한  한반도 지도를 도안하여 여학생들에게 수놓게 함으로써 수 한 올 한 올마다 민족애와 국화애를 심게 하였다. 이 무궁화 지도는 배화여학교 뿐만 아니라 경향 각지의 여학교에서 수놓아졌고, 가정주부들도 그것을 수놓아서 내실을 장식할 뿐 아니라 은연중에 민족의식을 가슴속에 수 놓는다. 한서 남궁억 선생이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들어와서 보리울학교를 세워 경영하게 된 것은 1918년이다. 배화학당을 나와 허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선향인 모곡(보리울)에 내려온 것이 인연이 되어 사립 모곡학교를 건립하고, 조국의 희망을 오직 청소년 교육에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남궁억의 교육 내용은 근대 학교의 체제로 구성하여 체육, 음악과목까지 빼놓지 않았으며 여학생에게는 가정 과목까지 배우도록 하였다. 그의 교육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민족사상의 보급으로 《동사략》과 알기 쉬운 국사 《조선이야기》였다. 
보리울은 민족교육과 함께 민족혼을 일깨운 무궁화의 고원이었다. 묘목을 팔아서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었고 위축되어 가는 애국심을 격려시키려는 일환책(一環策)으로 학교 경비 보충을 구실로 하여 무궁화 묘폭을 해마다 수십만 그루 씩 길러서 각 지방의 학교와 교회, 사회단체에 팔기도 하고 기증도 하였다. 묘목작업은 학생들의 실습시간을 이용하고, 김매고 거름을 주게 하여 학생들의 무궁화에 대한 애착심과 국가관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일제가 무궁화 묘목을 못 팔게 했을 때에는 어린 무궁화 묘목과 유사한 뽕나무 묘목을 겸해 갖은 방법을 다 취했다. 남궁억 선생은 역사교육과 무궁화 묘목을 널리 보급하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면서 1931년 〈무궁화 동산〉이란 노래를 만들어 보리울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이 무궁화 노래는 아이들이 고무줄 넘기를 할 때, 운동 시합을 할 때와 행진을 할 때에도 불렀으며 주일 학교에서 성적이 최고인 반에 우승기를 수여할 때 부르는 우승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춘풍(春風)을 만난 무궁화 동산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또다시 소생하는 우리 二千萬(이천만)
빛나거라 三千里(삼천리)무궁화 동산
잘살아라 二千萬(이천만)의 高麗族(고려족)
한서 남궁억의  <무궁화 동산>      

‘모곡’에 내려온 남궁억은 ‘유리봉’에 올라 기도를 올린다. 이곳에 오르면서 ‘삼천리 금수강산’이란 노랫말을 지어 찬송을 한다. 지금 유리봉에는 한서 남궁억 선생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매년 4월5일 추모제를 올린다.
모곡은 남궁억 선생의 교육철학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눈길에 난 청년 남궁억의 발자국을 밟으며 아이들이 오르던 둔덕길이 그대로 남아있고, 학교 앞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밀짚모자에 숯으로 만든 웃음 가득한 얼굴을 한 커다란 눈사람이 서있던 곳이며, 낡은 옷을 걸치고 졸업을 맞이한 아이들과 마을사람들이 남궁억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던 곳이다. ‘모곡’은 ‘무궁화의 고향’이다.
무궁화를 중심테마로 한 남궁억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고,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체험학습을 통한 무궁화 사랑과  홍천강이 만들어 내는 ‘명사십리 밤벌 유원지’의 백사장과 푸른 물결 그리고 재즈 같은 물소리를 즐길 수 있는 테마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모곡 밤벌 유원지’를 돌아 내려가면 ‘거북바위(배바위)’가 물위를 어슬렁거린다. 거북은 천년을 살았다는 듯 등에는 소나무 몇 그루를 기르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이다. 그러나 거북바위를 ‘말골(마곡)’쪽에서 올라오며 바라보면 배의 모습이다. 아쉽게도 모곡에서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다.
다시 돌아 나와 ‘마곡’으로 향한다.
길이 없으면 돌아가라. 그게 물이 내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마곡으로 들어서면 이제 강은 대하를 이룬다. 물의 나라다. 모든 길은 물로 통한다. 우선 충의 대교를 건너‘춘천시 남산면 황골유원지’로 들어선다. 홍천강이 빚어낸 ‘작은 남이섬(소남이섬)’을 만나기 위한 발길이다.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소남이섬’은 ‘웃섬’, ‘아랫섬’으로 나뉘어져 있다.
‘거북바위(배바위)’에서 이어지는 모랫강에 햇살이 반짝인다. ‘소남이섬’은 커다란 물고기형상을 하고 누워있다. ‘웃섬’은 거북바위를 지느러미에 달고 오른편으로 모래강이 흐르고, 아랫섬은 400리를 흘러온 홍천강 푸른 강물이 빚어놓은 풍광을 보여주는 백미중의 백미다. 왜 소남이섬이라 붙여졌을까? 그 까닭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작은 남이섬이 홍천강 리버로드의 또다른 시작이 되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끌린다.
‘마곡’에서 ‘홍천강’은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유리봉’을 감싸 안은 ‘홍천강 모곡 명사십리 밤벌유원지’에서 ‘재즈 같은 홍천강의 물결소리’를 들었다면 이제부터는 ‘마곡’을 흐르는 ‘샹숑 같은 음색의 홍천강’을 만난다. 샹송 같은 긴 여운의 물결이 뱃머리에 와 하얗게 부서진다.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 모두부치에서 발원한 400리 홍천강이 마곡을 돌아 흐르기까지 강은 오랫동안 저 홀로 울어왔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강을 닮아 있었고 강물소리에 어깨춤을 추었고 물빛을 닮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홍천을 떠나는 강은 아무도 없는 길목을 돌아나고 있었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처럼 낮은 소리로 흘렀다. 사람들도 그 경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다만 이 강을 바라보며 고 박경리 선생의 ‘토지’ 중에서 상여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과 의암 유인석 의병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나는 ‘떼내(마곡)’에서 하룻밤을 머무르면서 오래된 미래를 꿈꾼다. 떼내의 강. 강은 이제 너와 나의 강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명이며 삶이며 그리고 남겨둔 미래의 자연 한강을 이루며 서해로 흘러든다.

지금까지 「홍천강 탐사기행」을 함께 하신 애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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