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에 장애인을 돕고자 들어온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10년만 하겠다고 가족들과 약속을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연장이 됐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기쁨을 느낀 지 14년이나 지났다. 인생에서 중요한 50대 후반에서 60대를 다 보낸 홍천이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되었고 내 인생의 가을이 되고 말았다. 지난 홍천에서의 시간을 추억하며 삶의 가을을 보내고 있다.누구나 그렇겠지만 살다 보면 다들 꿈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마음속의 소망을 위해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리라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생각나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하고 그냥 사랑이 샘솟는다. 훈육할 때도 미워서가 아니라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기에 애틋하고 절절하다. 유행가 가사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가 정확한 표현 같다.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자식의 짝으로 나의 가정에 선물이 된 며느리도 마찬가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고 평생 반려로 선택한 사람이니 똑같이 소중하고 소중하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들을 한다.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유전적으로나
인생길을 걸어가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통한 경력을 축적하면서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보통 기본적인 것을 다 익히는데 3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한 곳에서 일하게 되면 3년을 인내로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직업이든 이직에 있어 2~3년 주기가 보통이다. 5년쯤 되면 고수, 10년이면 전문가, 그 이상 되면 대가쯤으로 부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몇십 년쯤 하면 고수 중의 고수, 요즘 아이들 말로 마스터라 부를 수 있겠다. 그런 위치들은 본인의 분야와 또 인간관계에서 인내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 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나서도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의사가 피지 말라는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도 말리는 담배를 엄청나게 피워 대시더니 암이 전이되고 말았다. 시판되는 대부분의 담배에는 4000 가지의 화학제품이 첨가된 듯하다. 담배의 본래 성분은 아닌 듯한 목록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중 발암물질이 70가지나 되지만 법적으로 성분을 일부만 표기하도록 해 7종만 표기했다고 한다(올해 5월 28일 동아일보 기사-오피니언 참고). 이 수술을 받고 4개월여 동안 병원에만 누워계시다가 8월 초 새벽에 원래
51년간 식자재 유통을 하며 접했던 요식업체들에 대한 사항들을 필자의 새로운 업장에 적용 가능한 요소들로 분석해 정리해 본다.첫째, 음식. 식당은 재료를 최상급으로 써야 한다. 식자재를 아주 저렴한 것만 찾는 식당은 대부분 망했다고 보면 된다. 필자도 싸구려 재료를 사 가는 식당들은 거의 가지 않는다. 예의상 한두 번은 간 적이 있지만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먹을만한 식당을 물어보면 좋은 재료를 선호하는 식당들을 주저하지 않고 추천하게 된다.합리적인 자재 구매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음식에 대한 고객에 대한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사업장을 운영하다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도 안 하고 사는 사람,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음주가무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은 함께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관계에서 소외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밤 문화를 함께 해서 친해진 관계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보다는 실수로 인한 싸움과 안면몰수 등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술과 나쁜 취미로 건강을 해치고 버는 돈보다 무리하게 쓰게 되니 금전문제도 많이 일으킨다. 다음 날 숙취로 제대로 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실수 연발이거나 아예 일을 하지 못
70대 중반에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무거운 것들을 나르고 정리하고 거래처나 고객을 상대하는 필자의 모습을 보면서 남들은 하기 좋은 말들로 “이젠 그만 하시지요~”란 소리들을 종종 한다. 위로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이지만 적어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감사하게 생각하며 허허 웃음으로 응대한다. 물론 필자 스스로도 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하지만 아직 일할 수 있고 건강에 문제도 없으니 단지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중이거나 기회를 보고 있다는 것에 가깝다고나 할
우리는 길을 가다가 다투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구경거리 중에서 싸움구경, 불구경 등이 제일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흔히들 할 정도니 말이다. 특히 홍천 시장통에서는 싸움이 잦다 보니 늘 있는 일처럼 여겨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벌어진 싸움은 이전에는 고성이 시작되고 사람이 몰리고 두 사람의 옥신각신 설왕설래를 구경하다 보면 그중에 목소리 크고 이길 것 같은 사람이 한결같이 유행어처럼 내뱉는 이야기가 있다. “이걸 그냥, 아~유! 법만 없다면!” 마치 금방이라도 내려칠 듯 주먹을 치켜들고 하면서 하는 말이다. “주먹이 운다 울어”라는
단골 할머니께서 사탕을 사러 오셨다. 새까만 피부와 고운 백발의 단아하고 유순한 모습에 주름이 잔뜩 잡힌 이마며 볼. 역시 주름 투성이의 손마디와 손가락 끝이 뭉툭하고 평생 매니큐어 한 번 발라본 적 없는 듯 손톱도 울퉁불퉁 이리저리 휘어졌다. 허리도 꼬부랑, 평생 많은 일을 성실히 하며 살아오신 역사가 한눈에 보이는 모습. 마침 점심 식사 중이라 자리에 없었던 탓에 옆의 길 턱에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필자가 돌아오자 과일 맛이 나는 큰 사탕을 달라신다. 종합사탕을 보여 드리니 “그거 맞네” 하신다.하나 입에 물고 가겠다고 하시며
필자는 14년 동안 식자재 유통 사업을 해왔다. 주거래처들이 모두 요식업체들이라 어떤 지역과 로케이션에서 어떤 업종이 흥하는지 혹은 망하는지를 지켜봐 왔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때도 메뉴와 인테리어 및 서비스, 상권 등 사업적인 분석을 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다. 일종의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다. 하지만 병(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에 ‘발전적 습관’쯤으로 고쳐 부르고 싶다. 그동안 홍천에서 식자재 유통을 하면서 역시나 이 지역 사업을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던
홍천에 온 지 14년째다. 두 번째 고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월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서울도 홍천도 내게는 고향이다. 어디든 내가 심어져 꽃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고향이다. 햇빛과 비와 양분을 얻고 벌도 만나고 나비도 만나고 개미도 만나 꿀과 양분을 나누며 어울려 아름답게 꽃피는 삶….가게를 오픈하고 창고 이전까지 고향 홍천에서의 9번째 이사다. 처음 3번째까지는 소위 장사라 부르는 힘들기로 유명한 유통업을 운영하면서 그 많은 업무들을 혼자 다 처리했다. 그러다 감사하게도 사업이 확장되고 물건이 많아지면서 혼자서는 도저히 감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당신이 그것을 성치하도록 돕는데 공모합니다.”브라질이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베스트셀러 에 나오는 말이다. 박씨 가문 공주의 한 연설문에서 대필가 최 여사가 인용(그래서 그 이후 왠지 훌륭함이 조롱당한 감이 다분하지만)한 바 있어 많은 한국인들이 알게 된 문장이기도 하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안 되는 것이고 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길은 열린다는 것이다.영업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
예전에는 웰빙(Well Being)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잘 사는 것에 초점을 뒀다면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지금은 웰다잉(Well Dying)라고 해서 잘 죽는 것에도 초점을 두는 세상이 된 지 제법 됐다. 나이 칠십 고개를 넘어서니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는 특히 홍천에 있을 때 죽음이라는 것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근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즈음 들어 주위에서 부고를 자주 접하다 보니 그러고 싶지
이경규가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 전 호주 멜버른 출신 ‘닉 부이치치’‘라는 세계적 동기부여 강사를 초청한 바 있다. 팔다리가 없는 ’해표지증‘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희망을 주는 연설가이자 목사로 또 장애인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8살의 나이에 학교에서 따돌림받아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팔다리가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한다.하지만 팔다리가 없어도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되고 어머니가 보여준 지체장애를 받아들인 남자에 대한 신문기사를 본 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때문에 어려움을 가진 이가
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면 거래처 주문이나 매장의 손님이 많아 장사가 잘될 때는 잡념이 그다지 없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속도 타고 월급 또박또박 나오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문득 부러워진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상사의 질타나 진급 누락, 지방 발령 등등이나 동료, 거래처 등과 업무상의 이해관계나 감정적 문제, 기타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고 마치 목줄에 묶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숨 막히는 삶에 회의를 느끼며 조그마한 내 가게라도 해 봤으면 하고 생각들을 한다.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서 먹다 보면 옆에서 먹는 짬뽕이 왠지
보통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들 잘 알고 있다. 중국 변방에 살던 노인의 말 한 필이 도망가 이웃들이 안 됐다 위로하니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도망간 말이 암말을 데리고 돌아와 이웃들이 복이라 하자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말을 타다 아들이 낙마해 다리가 부러지자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오랑캐가 침략해 젊은이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야 했을 때 아들이 다리를 다쳐 목숨을 구한 이야기다. 현재 상황이 득이 되는 듯해도 긴장을 풀지 말고, 내 마음에 안 들고 손해 같아도 감사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육상선수 시절부터 다져 왔던 오랫동안 몸에 밴 행동이다. 육상은 나 자신과의 싸움인 동시에 꼭 이겨야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는 운동이다. 큰 대회에는 예선,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까지 올라가는 길이 멀고도 험하다. 많은 연습과 체력이 축적되지 않고서는 3등까지만 인정해 주는, 때로는 2위까지만 참여가 가능한 큰 경기 등에서 상장이나 메달 실적을 올릴 수가 없다. 육상이라는 것은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나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개인 운동이다. 구기 종목과 달리 개인 운동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고 한다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맹목적이면서 애틋한 것이 사실이다. 창조주가 자신이 지은 인간을 바라볼 때 마음을 느끼게 하시려고 주신 마음 같다.누구나 손자 손녀를 보게 되면 자식을 키울 때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고들 한다. 아들 둘만 키웠던 필자 역시 손녀가 태어나자 또 다른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주일의 피로도 잊은 채 서울 본가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등 하루 종일 싱글벙글 손녀바보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따로 살던 큰아들이 휑했던 우리 집으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많다. 부모님의 종교를 따라 태어나면서 자연히 따르는 사람, 친한 친구 따라서 갔다가 믿는 사람, 인생의 너무 큰 고통을 맞이해 믿음 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람 등. 필자의 경우는 첫 번째이다. 어머니가 크리스찬이셨으니 당연히 어릴 때부터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동으로 주일이라 부르는 일요일마다 세상의 일은 안식하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삶이었다. 기독교를 빼고는 현장에 없었기에 불교나 그 밖의 종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필자가 겪은 기독교에 한해 그것도 일부
우리는 모두 태어나 걷기 시작하면서 수없이 넘어지면서 성장을 한다. 어떤 아이는 넘어지자마자 진짜로 너무 아파서 운다. 어떤 아이는 넘어질 때는 울지 않다가 상처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나서 울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훌 털고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근처에 있던 엄마나 아빠가 쏜살같이 달려와 일으켜 주기도 하고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응원하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사랑과 인내로 지켜보며 교육하는 부모도 있다.필자의 스타일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는 아빠였다. 처음 몇 번은 훌쩍거리며 스스로 일어나다가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