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616]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심사위원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심사위원

수년 전 중국 연변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1998년 한국문인협회에서 주최 주관한 국제문학 심포지엄과 해외 문학탐방을 겸한 2주간의 긴 여행이었다. 여행 코스로는 연변과 심양 봉천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을 두루 거치는 관광을 겸했다. 연변은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치라고 해서 한족자치주였다. 한국인이 원체 많아서 중국 속의 한국 같았다. 연변 거리의 상점 간판은 한글이 먼저고 그 밑에 한자 간판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한자를 먼저 쓰면 그 밑에는 반드시 한글로 썼다. 일본이나 중국 본토 대만 등에도 주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한글 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물론 홍천을 위시한 군·읍 단위까지도 영어 간판이 너무 많다. 홍천만 해도 그렇다. 인구 7만도 안 되는 읍내 상점에도 많은 영어 간판이 있다. 특히 카페나 경양식 음식점들은 상당수가 영어로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더 민망한 것은 노인복지 차원의 일자리 공공기관도 시니어클럽이란 영어 간판을 쓰고 있다.

영어 표기를 안 하면 그 의미가 상품설명에 지장이 있다면 영어로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점들도 상당수가 영어 간판이다. 물론 꼭 영어로 표기해야 할 간판도 있다. 예를 들면 스포츠용품 전문매장 즉 르까프나 나이키 등과 빵 전문점 등등 세계적 상품의 대리점은 영어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상품점도 영어 간판이 너무 많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아파트 이름은 대부분이 영어 이름이다. 아파트 주택 자체가 외국 수입 주택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파트 이름은 유독 영어 이름이 많다. 오드카운티 아이파크 안정스위트 등등이다.

상가나 아파트에 외국명 즉 영어로 표기하는 데는 은근슬쩍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나 아니면 외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이 근본적으로 남아있어 그런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주거시설은 단독주택과 다가구 빌라보다 아파트의 비중이 70%에 육박하고 있다.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급속도로 지어진 아파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재는 10가구 중 7가구가 아파트인 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영어는 필수적인 문자가 됐다. 과거 한문이 우리 5천 년 역사에 기여한 것처럼 이제는 영어가 우리의 일상적 제2의 국어인 셈이다.

과거의 10년이 요즘 1년이나 1개월 단위로 변하는 것처럼 주변 일상들이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 컴퓨터 문화에서 SNS 소셜미디어가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게 전자시대에 접어들었고 요즘은 AI 인공지능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다. 물론 한국인이 미국이나 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이나 외국인 신분이 됐다고 하더라도 외모는 한국인임을 벗어날 수 없다.

지난해에 세계 250여 개 나라에서 쓰고 있는 글자 100여 개 중 우수성을 따졌을 때 알파벳을 문자로 표시하는 영어권 나라와 알파벳을 기본으로 해서 나라의 특정 발성음에 따라 변형한 알파벳 나라 등을 포함해 우리 한글이 5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중 이탈리아어나 일본어 중국어 등을 제치고 당당히 5위를 했다는 것은 우리 한글이 과학적이면서도 모양도 좋고 그 뜻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데서 으뜸이라고 했다. 모음과 자음 24 글자로 모든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 글자임을 세계에서 인정한 것이다.

이 좋은 한글을 두고 왜 알파벳을 많이 쓰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컴퓨터시대를 넘어 AI 인공지능시대에 우리 한글은 그 편리함이 한층 돋보인다고 한다. 우리의 얼이 깃들고 세계에서 인정한 우수한 글자 한글을 점포명이나 아파트 이름 등에 많이 사용했으면 좋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있다. 한글 중심의 상가 간판을 쓴다면 한국의 위상이 더욱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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