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59】

문경에 가면 사우정이 있다. 고산高山 유수流水 명월明月 청풍淸風이 떠돌다가 이 정자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다는 뜻이겠다. 모두 의인화 시켰다. 시인 묵객들은 우뚝 선 높은 산은 그 웅장함을 자랑하면서 떡 버티고 섰으니 얼마나 피곤할까를 생각했을 것이다. 흐르는 물은 쉬었다가 갔으면 좋으련만 마냥 바빠서 흐른다는 감흥이리. 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두루 들러보니, 뭇별들이 맑게 갠 하늘에 곱기도 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感興(감흥)[1] / 교산 허균
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별들이 갠 하늘에 곱기도 하여라
바다에 눈 같은 물결 바람이 부는구나.
中夜起四望 晨辰麗晴昊
중야기사망 신진려청호
溟波吼雪浪 欲濟風浩浩
명파후설랑 욕제풍호호

푸른 바다에는 눈 같은 물결이 포효하는데(感興)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두루 둘러보니 / 뭇별들이 맑게 갠 하늘에 곱기도 하여라 // 푸른 바다에는 눈 같은 물결이 저리 포효하고 있는데 / 물을 건너려고 하니 바람이 너무 넓게만 부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흥겨운 느낌이 있음1]으로 번역된다. 시는 억지로 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시적인 감흥이 충만 되어야만 시상의 얽힘이 완만해지고, 시심의 방향이 바로 잡힌다. 그래서 흔히 시는 [감흥의 충만함]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시인도 시적인 감흥이 일어나 붓을 휘두르며 일필휘지로 [感興]이라는 시제로 시를 썼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시상은 시제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작은 것에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큰 시통 주머니를 만지게 된다. 한밤중에 가만히 일어나 사방을 들러보니 별들이 갠 하늘이 곱기도 하다고 했다. 많이 고와 반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화자는 차창가로 보이는 저 바다를 보면서 무한정 날아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감에 빠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푸른 바다에 눈 같은 흰 물결이 포효하고, 건너려고 하니 바람이 너무나 넓게 분다고 했다. 푸른 바다를 포효咆哮하고 싶다면 하늘이 온통 갖고 싶다는 뜻이었으리라.

후구로 이어지는 시상에서 [젊음은 몇 때나 지탱할 수 있으리 / 근심에 잠기니 사람이 늙어간다 // 어찌하면 죽지 않는 약 얻어서 / 난새를 타고서 삼도를 노닐어 볼거나]라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밤중에 사방 보니 곱기도 한 뭇별들이 푸른 바다 포효하고 바람 심히 부는구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비운의 천재 시인이다. 춘추관기주관·형조시랑을 지냈고, 1602년 사예·사복시정올 역임했다. 이해 원접사 이정구의 종사관이 되어 활약하였다. 1604년 수안군수로 부임하였다가 불교를 믿는다는 탄핵을 받아 물러나왔다 한다.

【한자와 어구】
中夜: 밤중. 起: 일어나다. 四望: 사방을 둘러보다. 여러 곳을 둘러보다. 晨辰: 새벽별. 麗晴: 곱고 맑다. 昊: 하늘. // 溟波: 푸른 바다. 너른 바다를 뜻함. 吼雪浪: 눈 같은 물결이 포효하다. 欲濟: 물을 건너려고 하다(배는 없지만 상상임). 風浩浩: 바람이 넓게 분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는 뜻이리라.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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