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46]

선현들의 시문을 보면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이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귀양 가 있으면서도 임금을 원망하거나 ‘네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른 바 [성은]으로 생각했다. 요즈음 우리의 뇌리에 많아 사라졌지만 [충효례忠孝禮]를 생각한다. 국가적 입장에서 나라에 충성하고 가정적인 입장에서 부모에 효도하는 정신이 그것이다. 은휴와 은일은 서로 뜻이야 같겠지만 아우는 동쪽 고을에, 형은 서쪽 고을에 살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稽首向瀛蓬(계수향영봉) / 사재 김정국
은휴와 은일은 서로가 뜻이 같고
아우는 서쪽 고을 동생은 동쪽 고을
임금님 향한 마음에 머리를 조아리네.
恩休恩逸意相同    弟在西州兄在東
은휴은일의상동    제재서주형재동
拱北丹心無彼此    時時稽首向瀛蓬
공북단심무피차    시시계수향영봉

구중궁궐 바라보며 때때로 머리를 조아린다네(稽首向瀛蓬)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1485∼154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은휴와 은일은 서로 뜻이야 같겠지만 / 아우는 동쪽 고을에, 형은 서쪽 고을에 산다네 // 임금님을 향한 마음 피차가 다름이 없건만 / 구중궁궐 바라보며 때때로 머리를 조아린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머리를 숙여서 영봉을 바라보다]로 번역된다. ‘병자정신록’에 기록된 내용이다. 동생 김정국이 기묘사화로 삭탈관직 되어 경기 고양 망동에 유락하면서 한강 물줄기가 닿은 여주 이호에 새 거처를 마련해 기거하던 그의 형 김안국을 그리면서 썼다. [망동의 앞강 파도는 같은 한강 물줄기인 여주 아호에 닿겠지]라는 심회를 읊었다.

시인은 형제간에 떨어져 있으면서 그리워하는 시상을 담아내고 있다. 은휴와 은일은 서로 뜻이야 같겠지만 아우는 동쪽 고을에, 형은 서쪽 고을에 산다고 했다. 이는 형 모제 김안국은 기묘년 겨울에 파직되어 이호(梨湖)에 돌아와 호를 은일恩逸이라 하였고, 아우 사재 김정국은 물러나 고향 망동에 살며 스스로 호를 은휴恩休라 했다.

화자는 비록 귀양지에서 피신해 있는 몸이지만, 임금님을 향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음을 보이는 시통주머니다. 임금님을 향한 마음 피차가 다름이 없건만, 구중궁궐 바라보며 때때로 머리를 조아린다고 했다. 사지로 귀양을 가 있으면서도 임금을 향한 마음이 달랐음을 지극하게 보여주는 전혀 다른 점을 보여준다. 이런 인물이 바로 출세지향형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은휴 은일 뜻 같지만 동쪽 서쪽 고을 달라, 임금 향한 마음 같아 궁궐 보며 조아리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1485∼154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이다. 1509년(중종 4)에 문과에 장원하고 사간, 승지를 지낸 뒤 기묘사화 때 삭탈관직 되었으나 그 뒤 병조참의, 공조참의, 형조참판을 지냈던 인물로 알려진다. 저서에는 [성리대전절요], [촌가구급방] 등이 있다.

【한자와 어구】
恩休: 형 김안국의 호, 恩逸: 아우 김정국의 호. 意相同: 뜻이 서로 같다. 弟在西州: 아우는 서쪽 고을에 있다(산다). 兄在東: 형은 동쪽 고을에 있다(산다). // 拱北: 북으로 (임금님) 받들다. 丹心: 단신. 無彼此: 다름이 없다. 時時: 때때로. 稽首: 머리를 조아리다. 向瀛蓬: 궁궐을 바라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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