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44]

명나라를 대국으로 섬겼던 조선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신을 보내서 두 나라의 관계를 매우 돈독하게 했다. 이런 관계가 문물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여 외국 문화가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압록강을 건너 육로로 가서 북경으로 들어가는 길이 우선이었지만, 서경인 대동강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뱃길도 이용했다. 낡은 주점이 서쪽 언덕에 간신히도 붙어 있고, 강에 걸친 다리에는 수양버들 물에 비친다고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朝天途中(조천도중)[1]  / 월사 이정구 
주점이 서쪽 언덕에 간신히 붙어 있고
강에 걸친 다리에는 수양버들 비치는데
말 앞에 보이는 산에 석양이 지는구나.
古店依西岸    河橋柳映灣
고점의서안    하교류영만
春生關外樹    日落馬前山
춘생관외수    일낙마전산

봄은 국경 밖의 나무를 저리 키우고 있는데(朝天途中)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전구인 오언절구다. 작가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낡은 주점이 서쪽 언덕에 간신히도 붙어 있고 / 강에 걸친 다리에는 수양버들 물에 비치네 // 봄은 국경 밖의 나무를 저리 키우고 있는데 / 말 앞에 보이는 산엔 석양이 지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중국으로 사신 여행길1]로 번역된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 사신을 다녀왔다. 특히 조선은 명나라를 아버지의 나라로 섬기면서 행차가 더욱 잦았다. 조선 땅에만 살다가 이국의 정취에 취하여 시적인 감흥은 남달랐을 것이다. 중국 가는 사람마다 이와 같은 시상을 모아 두었더라면 몇 가마니는 되었을 것이리. 

시인은 이와 같이 중국으로 사신으로 가는 길에 한 보따리의 시상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중국 가는 길에 낡은 주점이 서쪽 언덕에 간신히 붙어 있고, 강에 걸친 다리엔 수양버들 물에 비친다고 했다. 자주 갔던 길이라 익숙한 주점의 강가에 수양버들이 비치는 선경을 그려내고 있다.

화자의 색다른 시상은 깜짝 놀라게 한다. 조선에만 봄이 온 줄 알았는데 국경 밖 나무를 키우고 있다고 하면서 말 앞에 보이는 산에는 석양이 고국에서와 같이 석양이 앞을 지난다고 했던 시상이다. 봄과 석양의 멋진 비유법을 쓰고 있다. 이어지는 후구에서는 [만상은 좋은 계절에 놀라고 / 세월은 병든 얼굴을 파고드는구나 // 나그네 시름 쏟을 곳이 없지만 / 시를 지어도 다 다듬지는 못하겠다]고 했던 시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서쪽 언덕 낡은 주점 수양버들 물이 비춰. 국경 밖에 자란 나무 말 앞 건너 보인 석양’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로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이다. 대제학에 올랐다가 1604년 세자책봉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을 내왕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능력이 왕의 신임을 두텁게 받아 그 뒤에 병조판서·예조판서와 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한자와 어구】
古店: 낡은 주점. 오래전부터 있던 주점. 依西岸: 서쪽 언덕에 의지하다. 河橋: 강에 걸친 다리. 柳映灣: 수양버들이 물에 비치다. 수양버들이 만灣에 비치다. // 春生: 봄은 ~을 키우다. 봄이 키우다는 사역(使役)의 의미. 關外: 국경 밖. 樹: 나무. 日落: 해가 지다. 馬前山: 말 앞에 보이는 산.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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