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29】

시인의 생존시와 임진왜란과는 관계가 없지만, 촉석루는 의기의 한이 서려 있다. 정면에 [의기사]라는 간판 좌측에 일제 때 명기 산홍(山紅)의 시가 걸려 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산홍의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을사오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친일파 이지용이 천금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자 산홍은 거절했다. 강호에 떨어져 살았던 지 며칠이나 되었던고, 혼자 거닐다가 시를 읊으며 높은 누에 올라 본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矗石樓(촉석루)[1] / 퇴계 이황  
강호에 살았던 며칠이나 되었던고
거닐며 시 읊고 높은 누에 오르는데
공중에 비끼는 비는 만고의 흐름이네.
落魄江湖知幾日    行吟詩復上高樓
락백강호지기일    행음시부상고루
橫空飛雨一時變    入眼長江萬古流
횡공비우일시변    입안장강만고류
 

공중에 비끼는 비 한 때의 변화라고만 한다면(矗石樓1)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강호에 떨어져 살았던 지 며칠이나 되었던고 / 혼자 거닐다가 시를 읊고 높은 누에 올라 보네 // 공중에 비끼는 비 한 때의 변화라고만 한다면 / 눈에 드는 긴 강은 만고의 흐름이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촉석루에 올라서서1]로 번역된다. 남강에 접한 벼랑 위에 자리 잡은 단층 팔작집의 웅장한 건물로, 진주성의 주장대主將臺다. 1241년 고려 고종 28년 축성 당시에 부사 김충광 등의 손으로 창건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선 촉석루矗石樓로 명명되었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이다. 이렇게 보면 제일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임진란의 뜨거운 전흔戰痕을 알지 못하고 있어 보인 시상이다. 강호에 떨어져서 살았던 지 며칠이나 되었던고, 거닐다가 시를 읊고 높은 누에 올라 본다고 했다. 누대에 오르면 시상이 절로 읊어졌을 거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화자는 전구의 선경에 이어 후구의 후정은 한 때의 변화가 아니라 만고에 흐르는 남강의 유유함을 빗대고 있다. 공중에 비끼는 비 한 때의 변화라고만 한다면, 눈에 드는 긴 강은 만고의 흐름이겠다는 시상을 만지고 있다. 이어진 2구에서는[지난 일이 아득해라 둥우리의 학은 늙고 / 나그네 회포 일렁여라 들 구름만 떠가는구나 // 번화한 것은 시상詩想에 들어오지 않나니 한 번 웃어 보며 말없이 푸른 물을 굽어본다]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강호 떠나 사는 세상 시를 읊고 누에 올라. 비낀 비는 한 때 변화 긴 강 홀로 흐르면서’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며 율곡과 쌍벽을 이룬 조선 중기의 유학자다. 풍기 군수로 재직시 조정에 건의하여 1550년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이라는 편액과 함께 면세와 면역의 특권도 부여받았다. 이로써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한자와 어구】
落魄: 떨어져 살다. 江湖: 강호. 知幾日: 며칠 되었는지 알 수 없다. 行吟詩復: 거닐다가 시를 읊다. 上高樓: 높은 누대에 오르다. // 橫空: 빗긴 공간. 飛雨: 비가 날다. 一時變: 한 때의 변화. 入眼: 눈에 들다. 長江: 긴 강. 여기선 진주 남강을 뜻함. 萬古流: 만고의 흐름이려니.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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