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아름다운 눈[37]
팔십 세가 넘어서도 방대한 자료를 암기해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명민함과 3인의 좌파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대항했던 용기, 일관성 있는 중심을 지닌 원로 지식인으로 후학들에게 존경이나 동경은 물론 사랑도 받는 듯 보였다. 내가 저 연배에도 저렇게 기억력이 좋을 수 있을까 생각도 많이 해 봤다.
그의 주옥같은 한 마디 한 마디는 들을 때마다 10년 체증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상식적으로 바르지 않은 곳에 언제나 따끔한 훈육이 있었고, 홀로 평생을 살며 별세 후 당신의 몸을 모교인 연세대학교 의대에 기증했다. 유신시대 독재에 대한 저항이 담긴 책 출판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는 아픔도 맛봤던 그는 시대의 아픔을 샌드백처럼 직접 겪으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원망보다 그의 탁월함을 칭찬했다.
얼마 전 94세의 일기를 끝으로 몸은 노환으로서 이 세상과는 작별했지만, 이 땅에 화평을 이루도록 바른 말을 가지고 소신 있게 훈육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범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 정신은 죽지 않고 살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리라. 그리고 그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
한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잠시 대립적 관계에 있었다 해도 엄연히 자유우파로 평가받고 있는 바, 정치적 색채나 공인으로선 해서는 안 될 대통령들에 대한 자살 촉구 발언들에 대해서는 적잖이 충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인간이기에 불완전한 존재이고 인간이기에 얼마나 분노하면 저런 말이 나올까. 마가복음 9:42에서 예수가 “또 나를 믿는 이런 어린 아이들 가운데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그의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으니라.”는 말처럼, 보통 일반 서민들에게는 혼란을 주기 위해 진실 30%에 거짓 70%을 섞어 배포하라는 지령이 있다는 풍문의 신빙성을 높이 사는 바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심각한 진실을 알게 되어서는 아닐까...
또 하나의 흠이라며 고 정주영 회장이 이끈 당에 끼어 정치판에 발을 잠시 담근 것에 대해 평가할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고. 그럼, 그의 백만분의 일이라도 인류를 위한 기여를 노력해 보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배우지 못한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한 것인데 배운걸 가지고 못 배운 사람을 누른다든지 이용하는 것은 죄악중 죄악”이라며 삼척동자도 지식이 어두운 할머니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한 그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세월”이라던 김동길 박사. 적지 않은 에너지와 특별함으로 지켜냈을 중심잡기와 가족에게 나눌 시간과 힘을 쏟아 붓기에도 인생의 시간이 부족하다 여겼던 것일까...
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김동길 박사, 그가 정말 이 험한 곳을 떠나갔다. 이 세상에는 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 중심에는 오직 물질적 탐욕, 권력욕 등등등의 동물적 욕구에만 충실한 채,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에는 관심도 없이 자신만을 사랑하기에 바쁘게 살아가는 추한 모습들이 많다. 또 아무리 좋은 점을 찾으려해도 너무나 힘이 든 저런 형편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시험에 합격했을까 의문인 혼란한 요지경이다. 빠른 변화로, 펜데믹으로 세대간의 벽이 더 높고 두터워지는 마당에 우린 훌륭한 선배 한 분을 떠나 보내고 말았다. 소중한 친한 벗을 잃은 듯한 상실감은 짧지 않은 시간 내게 머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