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4]

한강 머리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지금으로 하면 영등포나 마포나루터쯤인지 모르겠다. 백운거사는 산에 오르거나 여행을 하면서도 시통주머니는 가만있지를 못하고 비웠다 채워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해 떠오르자 묵은 안개 걷히고 길을 재촉하면서 한강 머리에 이르렀다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江上待舟(강상대주) / 백운거사 이규보
아침해 떠오르자 묵은 안개 걷히고
채찍을 재촉하여 한강 머리 이르렀는데
황제가 안 돌아오니 물만이 흘러가네.
朝日初昇宿霧收    促鞭行到漢江頭
조일초승숙무수    촉편행도한강두
天王不返憑誰問    沙鳥閑飛水自流
천왕불반빙수문    사조한비수자류

황제가 돌아오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江上待舟)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아침해가 두둥실 떠오르자 묵은 안개 걷히고 / 채찍을 재촉하면서 한강 머리에 이르렀네 // 황제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 / 해오라기 한가히 나는데 물만 흘러가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의 제목은 [강 위에서 배를 기다리며]로 번역된다. 시제는 ‘江上’이라고 되어 있지만 의미상으로 보아 [江邊] 혹은 [강나루] 쯤이 더 낫겠다. 강변 나루터에서 나룻배가 오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돛이 바람을 가득 싣고 나룻배가 도착해야만 다른 목적지로 갈 수 있을 터인데 떠나지 못한 초조함이 한껏 묻어나는 시적 배경을 읽는다. 나루터에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초조한 시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어 보인다.

시인은 아침 새벽에 나룻배를 타기 위해 한강 나루에 도착하면서 서둘렀을 것이라는 시상을 만나게 된다. 아침해 떠오르자 묵은 안개 모두 걷히면서, 말채찍을 서둘러 재촉하며 한강 머리에 이르렀다고 했다. 한강 머리는 국내를 여행하는 배가 주로 정착했던 곳임을 생각하면 먼 행차는 아니었겠다.

화자가 [황제]라고 비유했던 주체는 기다리고 있는 거룻배를 뜻하는 시상임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황제가 돌아오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라고 하면서 해오라기만이 한가히 멀리 날고 있고 물만 유유히 흘러간다고 했다. 선경에 의한 자연의 시상에 의해 후정의 뜻을 한 아름 담아낸 시심을 읽을 수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아침해에 안개 걷고 한강 머리 이르렀네. 황제 안부 물어보랴 물만 홀로 흘러가네’ 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로 고려의 문신이다. 재상 조영인, 임유, 최선, 최당 등이 왕에게 이규보를 천거하였으나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방해로 오랫동안 벼슬에 오르지 못하였던 인물이다. 최충헌의 도움으로 전주사록으로 벼슬에 처음 나갔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朝日: 아침에 해가 뜨다. 初昇: 처음으로 오르다. 宿霧收: 묵은 안개가 걷히다. 促鞭: 채찍을 재촉하다. 行到: 이르다. 漢江頭: 한강 머리. 한강이 시작되는 첫머리. // 天王: 황제. 不返: 돌아오지 않다. 憑: 의지하다. 誰問: 누구에게 묻나? 沙鳥: 해오라기. 閑飛: 한가하게 날다. 水自流: 물만 저절로 흐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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