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49]

목욕시켜주기를 요구했던 낭자는 노힐부득에게도 목욕을 권했다. 망설이던 그가 탕 속에 몸을 담그자마자 온 방에 향기가 진동하며 몸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옆에 연꽃좌대가 나타나자 낭자가 앉기를 권하며 “나는 관음보살이오. 대사는 이제 [대보살]을 얻었소.”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일연선사는 다시 남암(南庵)에서 염불했던 노힐부득을 찬(讚)하며 읊었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讚南庵大師(찬남암대사) / 삼국유사 일연
골짜기에 안개 자욱 어디서 왔는지
남창에 대자리니 어서 쉬어 가시오
밤 깊어 시끄러움에 잠 깨울까 염려되오.
谷暗何歸已暝煙    南窓有簟且流連
곡암하귀이명연    남창유점차류연
夜闌百八深深轉    只恐成喧惱客眠
야란백팔심심전    지공성훤뇌객면

다만 시끄러운 소리 손님 잠깰까 염려했네(讚南庵大師)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삼국유사를 남긴 일연(一然:1206~1289)이며 선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골짜기 어둡고 안개 자욱이 끼여 어디서 왔던가 / 남창에 대자리 있으니 어서 쉬어 가시오 // 밤이 깊어가니 108염주 굴리고 굴렸구려 / 다만 시끄러운 소리 손님 잠깰까 염려했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남암 대사를 찬하는 노래]로 번역된다. 북암의 달달박박보다는 남암의 노힐부득은 더 온정적이다. 우리 선현들의 문학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정반합이란 헤겔의 역사적인 변증법적 원리를 잘 원용하고 있다.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달달박박에 대한 언행과 어서 오라고 손 내미는 노힐부득의 언행의 대비는 미타의 염불이란 불심에서 박진감을 더한다.

이처럼 극적인 효과에 능란한 거장의 감독이나 되는 것처럼 시인은 엉뚱한 곳으로 초점을 맞춘다. 골짜기 어둡고 안개가 자욱한데 어디서 왔던가를 외치며 남창에 대자리 있으니 어서 쉬어 가시오라고 했다. 문제는 남녀가 유별이라고 했거늘 그게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독자의 물음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인정의 풍요로움을 먼저 베풀라는 자비심의 발로였겠다.

화자는 다시 우려감 어린 걱정을 그냥 내려놓는 은덕을 베푼다. 지금은 밤이 깊어가고 있건만 백팔염주를 굴리고 굴렸다는 한 마디 대꾸를 던진 후에, 상대를 안심시키는 마음으로 [다만 시끄러운 소리 손님의 잠 깨울까 염려된다고] 했다. 화자의 입을 빌어 자비심이 물씬거리는 모습을 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어둡고 안개 자욱 대자리에 어서 쉬오. 108염주 굴린 소리 손님 잠을 깰까봐서’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3권 4부 外 참조] 일연(一然:1206∼1289)으로 고려 중기의 승려·학자이다. 어머니가 1284년 타계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인각사에서는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 개최하였다.

【한자와 어구】
谷暗: 골짜기가 어둡다. 何歸: 어느 때 돌아가나. 已暝煙: 이미 안개가 자욱이 끼다. 南窓: 남쪽 창. 有簟: 대자리가 있다. 且流連: 또한 편히 쉬어가다. // 夜闌: 밤이 깊다. 百八: 108염주. 深深轉: 깊이 굴리고 굴리다. 只恐: 다만 두려운 것. 成喧: 의젓함을 이루다. 惱客眠: 잠이 깰까 염려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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