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32]

시인은 당대의 평양 가객들이 공연을 펼칠 때마다 양귀비를 담은 노래를 선창했다. 이 비련의 가락이 평양 감사의 부임 축하연에 불렸던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관서인들의 기호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세춘이 이 노래를 평양에 소개하면서 서울에서 유행 중이던 새로운 가락을 소개했다. 늦은 저녁 무렵에 신륵사 종소리 들리니, 누각 앞 버드나무에 묶어둔 배 풀어 돌아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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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神勒寺(귀신륵사) / 석북 신광수
봄날에 푸른 강물은 옷에 물이 든 듯
강위에 원앙새는 서로 쫓아 나는 데
신륵사 종소리 들려 배 풀어 돌아가네.
綠江春可染人衣     江上鴛鴦相逐飛
녹강춘가염인의    강상원앙상축비
向晩聞鐘神勒寺     樓頭楊柳解船歸
향만문종신륵사    루두양류해선귀

봄날 푸른 강물은 하얀 옷을 물이 들듯하고(歸神勒寺)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로 조선 후기 문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 날 푸른 강물은 하얀 옷에 물이 들듯하고 / 강위에 원앙새는 서로 쫓아 날으네 // 늦은 저녁 무렵에 신륵사 종소리 들리니 / 누각 앞 버드나무에 묶어둔 배 풀어 돌아간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신륵사로 돌아가며]로 번역된다. 신륵사는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에 소재한 절이다. 이 절의 발음은 이른바 [ㄴ]음의 [ㄹ]음화 현상으로 발음은 [실륵사]라고 해야 함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천리-만리]를 [철리-말리]로 발음하는 경우와 같다. 관서악부 등 숱한 시를 남긴 이름 있는 대시인이었지만 신륵사를 찾는 마음과 시적인 감흥을 그대로 잠재우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어느 봄날 신륵사를 찾아 강과 산을 찾아 자연의 경관에 감탄하며 끌어당기는 자기 심회에 젖었다. 봄 날 푸른 강물은 하얀 옷에 물이 들듯하고, 강위에 떠가는 원앙새들이 서로 쫓아다니면서 날고 있다는 선경의 시상을 떠올렸다. 푸른 강물이 흰옷에 물이 들듯이 했다는 시상이나 강물소리가 원앙새를 쫓아 날듯하다는 시적인 표현은 감흥을 받기에 충분하다.

시상은 이제 신륵사의 정원과 누각 쪽으로 시선을 되돌리고 있다. 늦은 저녁 무렵에 신륵사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니, 누각 앞 버드나무에 묶어두었던 배를 풀어 돌아간다고 했다. 오히려 전경과 후정에 몸을 되돌리는 바꿈의 시상을 만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푸른 강물 물들 듯이 강 위 원앙 서로 쫓네. 신륵사 종소리 듣네 묶어둔 배 풀어 돌아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신광수(申光洙:1712∼1775)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35세 때 한성시에 2등으로 급제했던 그의 과시제는 [등악양루탄관산융마]>로 시인으로서의 큰 명성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39세에 진사에 급제했으나, 오래도록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과거에 낙방하였던 인물로도 전해진다.

【한자와 어구】
綠江春: 봄날의 푸른 강물. 可染: 가히 물들다. 人衣: 사람의 옷. 江上: 강 위에. 鴛鴦: 원앙새. 相逐飛: 서로 쫓아 날다. // 向晩: 늦은 저녁. 聞鐘: 종소리를 듣다. 神勒寺: 신륵사. 樓頭: 누각 머리. 楊柳: 양류. 버드나무. 解船歸: 배를 풀어서 돌아가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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