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26]

마음이 답답할 때 바람을 쏘인다. 가슴이 막힐 때 강변이나 강둑을 거닐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물결의 다소곳한 정취에 마냥 취하면 들뜬 마음이 안정된다. 마음이 답답할 때 산에 오르는 심정도 마찬가지다. 노 젓는 즐거움이 마음을 흥분시켜 저 멀리서 은은한 노랫가락의 흥취를 더한다. 갈대 잎 조각조각 이슬에 가득 차고 있고, 봉옥에는 가을바람이 한밤 내내 일고 있다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江行(강행) / 농암 김창협
갈대 잎 조각조각 이슬이 가득차고
봉옥에 가을바람 한밤 내내 이는데
맑은 강 노 젓는 소리 꿈속의 소리 같네.
蒹葭片片露華盈     蓬屋秋風一夜生
겸가편편로화영    봉옥추풍일야생
臥遡淸江三千里    月明柔櫓夢中聲
와소청강삼천리    월명유노몽중성

달은 밝고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 꿈속 소리 같네(江行)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다. 원문을 의역하면 [갈대 잎 조각조각 이슬에 가득 차고 / 봉옥에 가을바람 한밤 내내 일고 있다네 // 누워서 맑은 강 삼십 리 거슬러 올라가니 / 달은 밝고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 꿈속 소리 같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강가를 걷고 있노라니]로 번역된다. 마음이 적적할 때 강변을 찾아 걷다보면 한결 위안이 되는 수가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물은 희망을 안겨다 주고, 강가에 출렁거리는 파도는 희망으로 안기면서 손짓을 하기도 한다. 갈매기 떼가 날다가 ‘까-옥’하면서 슬쩍 던지는 무언無言의 대화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도 준다.

시인은 강가를 거닐 때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다잡아 시상을 일으켰을지 모른다. 갈대 잎이 조각조각 살포시 내려 이슬에 가득 차고 봉옥蓬屋에 산들거리는 가을바람 한밤 내내 일고 있다는 시상의 밑그림을 채우고 있다. ‘봉옥’이란 자주 쓰이지 않는 말이다. 직역하면 쑥 집이란 생소한 말이겠는데 여기에서 그대로 쑥 잎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꽤나 먼 거리를 걸었던 모양이다. 왕복 24km였는데 걷기에는 먼 거리다. 누워 손짓이라도 하듯이 맑게만 흐른 강 삼십 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달은 밝고 부드럽게 사공이 노 젓는 소리는 꿈속의 소리 같다는 한 줌 시상을 일구고 강이 반듯이 누워서 흐른다는  멋을 부린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갈대 잎이 이슬 가득 가을바람 한밤 내내, 삼십 리 길 강 거슬러 꿈속 같은 달빛 곱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김창협(金昌協)은 조선 후기 문신, 학자로 호는 농암(農巖), 삼주(三洲)다. 증조부는 좌의정 김상헌, 조부는 동지중추부사 김광찬,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 어머니는 해주목사 나성두의 딸이다. 영의정 김창집의 동생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한자와 어구】
蒹葭: 갈대 잎. 片片: 조각조각. 露華盈: 이슬이 화려하게 가득 차다. 蓬屋: 봉옥. 秋風: 가을바람. 一夜生: 한 밤 내내 일다. // 臥: 눕다. 遡淸江: 맑은 강에서 놀다. 三千里: 삼천리. 月明: 달이 밝다. 柔櫓: 부드럽게 노를 젓다. 夢中聲: 꿈속의 소리.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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