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25]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봄바람이 스치면 잠자고 있던 마음이 부스스 눈을 뜨면서 설레는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으리라. 봄바람은 벌써 봄소식을 짊어지고 산을 넘고 등을 넘어 성큼 다가오는데 규방의 여심이 어찌 마음 편할 수 있었으리. 봄바람과 함께 봄에 머금은 꿈도 그랬던 모양이다. 수정 발 밖은 아직 날이 저물어 오는데, 늘어진 수양버들이 푸른 난간을 뒤덮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春夢(춘몽) / 지재당 강담운
수정 발 밖에는 날이 저물어 가고
늘어진 수양버들 난간 벽을 덮었는데
꾀꼬리 방해를 마소 꿈속에 그대 찾소.
水晶簾外日將闌    垂柳深沈覆碧欄
수정렴외일장란    수류심침복벽난
枝上黃鶯啼不妨    尋君夢已到長安
지상황앵제불방    심군몽이도장안

그대를 찾아 꿈속에서 서울에 이르렀소(春夢)으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지재당(只在堂) 강담운(姜澹雲:1863∼1907)인 여류시인이다.  의역하면 [수정 발 밖은 아직 날이 저물어 오는데/늘어진 수양버들이 푸른 난간을 뒤덮었구나//가지 위의 꾀꼬리 울음소리를 절대 방해 마오/그대를 찾아 꿈속에서나마 서울에 이르렀소]이다.

위 시제는 [봄날의 한 바탕 꿈]으로 번역된다. 흔히 봄꿈이라는 말을 한다. 봄이 돌아오면 한 해를 설계하고 실낱같은 희망들도 품어 본다. 그래서 춘몽春夢,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하여 한바탕 혼자서 허투로 꾸어 보는 꿈이란 말까지 한다. 봄꿈은 새로운 도약이기에 누구나 설계할 수도 있다.

시인은 이와 같은 새봄을 맞이하면서 선경先景의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수정 발을 쳐놓은 창밖은 날이 점점 저물기만 하고, 축 늘어진 수양버들 푸른 난간 뒤덮었다는 깊숙한 시상 한 줌을 떠올리고 있다. 봄은 멀리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마음에 둔 사랑의 터전 속에서 품어 나온다.

시인은 화자의 입을 통해 그가 바라는 봄꿈은 암만해도 임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음을 알게 한다. 가지 위의 꾀꼬리 울음 그대는 방해 마오, 그대 찾아 꿈속에서는 서울에 이르렀다는 한 소회素懷를 담아내고 있다. 꾀꼬리 울음을 들을 수 있도록 방해하는 주체는 암만해도 수양버들이었을 것이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음을 흔들어 깨운 꾀꼬리 울음에 취했을 것은 뻔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밖은 아직 저문데 난간 덮은 수양버들, 꾀꼬리 울음 방해 마오 그대 찾아 이르렀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지재당(姜只在堂) 강담운(姜澹雲:1863∼1907)으로 김해 기생출신이다. 차산(此山) 배문전(裵文典)의 소실이었고, 시뿐만 아니고 글씨에도 뛰어 났다. 첩으로 기구한 일생을 보냈으며. 지기의 생애(生涯)를 되돌아보며 한스러운 사연들을 글로 남겼다. 풍경시를 많고 시집 [지재당고]에 45수가 있다.

【한자와 어구】
水晶:수정. 簾外: 발 밖. 日將闌:날이 저물어 오다. 垂柳:늘이진 수양버들. 深沈:깊숙하게. 覆碧欄:푸른 난간을 덮다. // 枝上:가지 위. 黃鶯:꾀꼬리. 啼不妨:우는 것을 방해하다. 尋君:그대를 찾다. 夢:꿈속에서. 已到:이미 도달하다. 먼저 오다. 長安:장안.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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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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