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24]

매화는 주로 뜰에 심어 고결한 향을 으뜸으로 여겼다. 봄을 맨 먼저 알린다고 했으니 선비들이 즐겨 애송했던 시문을 수없이 만난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을 밟고 피어 있어 더욱 사랑스러웠다. 뜰에 핀 매화에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해 화분에 심어 방안에 두는 선비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백옥당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심어져 있는데, 예쁜 꽃 바라보니 갓 피어나 술잔을 들게 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盆梅(분매) / 창계 임영
백옥당 매화나무 한 그루 뿐이고
예쁜 꽃 피어서 술잔을 들게 하는데
하늘의 눈보라 속에 어찌 얻어 왔을까.
白玉堂中樹    開花近客杯
백옥당중수    개화근객배
滿天風雪裏    何處得夫來
만천풍설리    하처득부래

온 하늘은 눈보라 속인데 어떻게 얻어 왔을까(盆梅)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원문을 의역하면 [백옥당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심어져 있는데 / 예쁜 꽃 바라보니 갓 피어나 술잔을 들게 하누나 // 온 하늘은 아직도 눈보라 속에 잠겨 자욱하기만 한데 / 어느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얻어 왔을까]라는 시상이다. 

시제는 [분재한 매화를 보면서]로 번역된다. 매화는 자연으로 두었을 때 제 이름값을 한다. 포근하게 적시는 이슬도 받아먹고, 촉촉하게 내린 비를 받아 나무뿌리들끼리 땅 속에서 만나면 정다운 대화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누며 오순도순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화분에 심어 놓으면 답답했을 것이며 정담어린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것이 뻔해 보인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매화를 품에 안고 시상을 일으켰을 것이다. 백옥당 앞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피어있는데 예쁜 꽃이 애잔하여 술잔을 들게 하네. 흥분된 마음에 자꾸만 술잔을 들게 했다는 시상이다. 매화는 봄의 전령으로 새로운 한 해가 돌아왔다고 알리는 반가운 소식 때문이기도 했겠다.

화자는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아 눈보라 속인데도 봄을 안고 온 매화의 고마움에 취해 있음을 살피게 한다. 그래서 온 하늘은 아직도 차가운 눈보라 속인데 어느 곳에서 어떻게 온지도 모르게 이 모든 자연의 선물을 얻어서 왔을까 라는 시적인 노래다. 글 중에 매화라는 말은 한 자도 없으나 이것이 매화를 두고 노래함을 금방 알 수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외로운 매화 한 그루 갓 태어난 술잔 같네. 눈보라 속 잠겨있어 어느 곳에서 얻어왔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창계(滄溪) 임영(林泳:1649~1696)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 학자이다. 송시열·송준길에게 수학하고, 이기설에 있어 이이의 이기일원론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설에는 반대하였다. 저서로 <창계집>이 있다.

【한자와 어구】
白玉堂: 선비들이 거처하는 곳, 中樹: 외롭게 심어져 있다.  開花: 매화가 피다. 近客杯: 가깝게 있는(사는) 친구와 술 한잔하다. 滿天: 하늘 가득하다. 風雪裏: 바람과 빗속에, 바람과 비가 내리다. 何處: 어느 곳. 得: 얻다. 찾아 오다는 뜻. 夫: 여기선 매화를 지칭하는 지시대명사. 來: 매화가 오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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