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19]

도연명이 남긴 귀거래사는 고시풍으로 4행, 5행, 6행, 7행 등 시적인 율律의 얼개는 잘 갖추었지만 탈정격의 틀에서 자유롭게 쓴 작품이다. 첫 연에서 “돌아가야지! 논밭이 묵어가는데 내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으랴! 이제껏 마음은 몸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근심할 수 있는가” 라고 했다. 시인은 귀래도에서 눈앞을 문득 바라보니 옮겨지는 산하가 있어, 진서의 갑자를 쓰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보았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歸來圖(귀래도)[3] / 완역재 강석덕
눈앞을 바라보니 산하는 옮겨지고
진의갑자 쓰는 마음 괴로워하는데
의리는 하늘에 닿고 바람이 비길만하네.
眼中忽見山河移    書晉甲子寸心勞
안중홀견산하이    서진갑자촌심로
豈但高義凌天衢    忠憤直與秋雲俱
기단고의릉천구    충분직여추운구

오직 충성과 의분이 가을바람에 비길 만하다(歸來圖3)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완역재(玩易齋) 강석덕(姜碩德:1395∼1459)이다.  원문을 의역하면 [눈앞을 문득 바라보니 옮겨지는 산하가 있어 / 진서의 갑자를 쓰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 어찌 높은 의리가 하늘에까지 닿았을 뿐인가 / 오직 충성과 의분이 가을구름에 비길 만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귀래도를 보면서3]로 번역된다. 시인의 작품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도연명은 심양 골짜기로 관직을 반납하고 떠났으며(淵明歸去潯陽曲) 후대 사람들은 그것이 부러워 그림으로까지 묘사하였고(後人慕之寫爲圖) 약하지만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이 밝혀주는 앞길에 영원성을 부여했다(晨光熹微前路永)고 했음을 생각했다.

시인은 진나라의 갑자를 쓴다는 것이 괴로웠던 모양이다. 눈앞을 문득 바라보니 옮겨지는 산하는 예와 다름이 없었는데 진晉의 갑자를 쓰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음을 내비친다. 몸담았던 나라의 연호를 하루  아침에 버리는 일이 달갑지 않았으렷다.

화자는 긍정적 자기만족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높은 의리가 하늘에까지 닿았을 뿐인가라고 하면서 충성과 의분이 바로 가을바람에 비길 만하다 했다. 긍정적인 자기만족이다. 이어진 네 번째 구에서는 [이 처사, 이 절개 홀로 높아 어찌하나 / 당시 조정에 호준들도 많구나 // 내 이제 그림 만지면서 거듭 탄식하니 / 청풍이 삽상하게 불어 귀밑머리를 날린다]라고 하면서 딴전으로 돌리는 모습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옮겨지는 산하 있어 진서 갑자 괴로워서, 높은 의리 하늘 닿아 가을바람 비길 만도’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완역재(玩易齋) 강석덕(姜碩德:1395∼1459)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세종 초에 지양근군사로 발탁되었고, 이어서 선정을 베풀면서 인수부소윤에 승진되어 집의를 역임하였고, 1441년(세종 23) 복직되어 우부승지가 되는가 싶더니만, 1444년 호조참판, 이듬해 대사헌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眼中: 눈 앞. 忽見: 홀연히 보다. 山河移: 산하로 옮기다. 書晉: 진서. 진나라 글. 甲子: 갑자. 寸心勞: 쓰는 마음이 괴롭다. // 豈但: 어찌 다만. 高義: 의리가 높다. 凌: 능멸하다. 天衢: 하늘을 두려워하다. 忠憤: 충성과 의분. 直: 바로. 與秋雲俱: 가을구름과 비길 만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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