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18]

도연명은 중국 진나라 때 사람으로 41세인 405년경에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있으랴!(吾不能爲五斗米折腰!)라는 구호와 같은 글을 남기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현령 자리에 부임한지 두 달 남짓 되던 때의 일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을 벗 삼으며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읊었으니 ‘歸去來辭’다. 시인은 귀래도에서 다시 돌아오니 세 길은 다 거칠어졌는데, 마침 거문고와 술이 있어 웃고 즐기고 있었다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보았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귀래도:歸來圖(귀래도)[2] / 완역재 강석덕
돌아오니 세 길은 모두가 거칠어지고
거문고와 술이 있어 웃으며 즐기는데
집안에 희화상인에 흥겨움 도도하네.
歸來三徑任蕪沒    恰有琴樽供笑傲
귀래삼경임무몰    흡유금준공소오
環堵蕭然臥北窓    羲皇上人興陶陶
환도소연와북창    희황상인흥도도

담장은 쓸쓸한데 집안 북창에 가만히 누웠더니(歸來圖2)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완역재(玩易齋) 강석덕(姜碩德:1395∼1459)이다.  원문을 의역하면 [다시 돌아오니 세 길은 모두 거칠어졌는데 / 마침내 거문고와 술이 있어 웃고 즐기고 있었다 // 담장은 쓸쓸한데 집안 북창에 가만히 누웠더니 / 희황상인 듯이 흥만은 도도하더라]라는 시상이다.

시제는 [연명 귀래도를 읽고서2]로 번역된다. 끝구에 보인 [羲皇上人興陶陶희황상인흥도도]라는 구절은 귀래도 본 시상에서 희황상인(=羲皇時代)을 도연명이 5월 더울 때 북창北窓에 누워 맑은 바람이 불어 들면 스스로 태고의 희황 시대(=羲皇上人) 이상 걱정은 없고 편안한 사람이라 했다는 데서 기인한다. 역사적 고사를 잘 인용하는 기발함을 보인다.

시인은 비록 얻은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그냥 포기했었는데, 다시 반긴다고 했다. 돌아오니 세 길은 다 거칠어졌는데도 마침 거문고와 술 있어 출출한 김에 웃고 즐긴다 했다. 술과 거문고는 흥을 돋우는 데에 절대적이었다.

화자는 집에 돌아와 생각에 잠긴다. 담장은 쓸쓸하기만 한데 집안 북창에 누웠더니 희황상인 듯 흥이 도도하더라고 했다. 사람은 걱정 없고 편안함에서 사색도 할 수 있다는 실례리라. 시인은 끝구에서 [눈앞을 문득 바라보니 옮겨지는 산하 / 진의 갑자를 쓰는 마음이 괴로웠어라 // 어찌 높은 의리가 하늘에까지 닿았을 뿐인가 / 충성과 의분이 바로 가을바람에 비길 만하다]라고 하여 충성의 깊음을 알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또 오니 세 길 거칠고 거문고 술 즐기더니, 북창에 누웠더니만 희황상인 듯 흥만 도도’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완역재(玩易齋) 강석덕(姜碩德:1395∼1459)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문절공 이행의 문하에서 수업을 하고 태종 초에 음사로 계성전직이 되었으며, 공조좌랑으로 재직 중이던 1416년(태종 16)에 천추사가 중국에 가져간 은이 가짜인 문제로 파직되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歸來: 돌아오다. 또는 돌아가다. 三徑: 세 길. 任蕪沒: 다 거칠어지다. 恰有“ 흡사 ~이 있다. 琴樽: 거문고와 술. 供笑傲: 말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 環堵: 두른 담장. 蕭然: 쓸쓸하다. 臥北窓: 북창에 누워있다. 羲皇上: 희황상인 듯이. 興陶陶: 흥만은 도도했었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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