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16]

농촌의 한 안타까움을 그림으로 그리기 일쑤다. 흔히 볼 수 있는 전원의 풍경이다. 심술궂은 애들이 고추밭에 들어가 애써 가꿔놓은 농사를 망치는 수가 있다. 한두 달 있으면 보리를 수확해야 하는데 소牛 고삐가 풀려 이삭이 패서 올라온 보리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한 시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해가 지도록 호미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어린 아들이 문에서 나를 맞이하며 말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田家(전가) / 세한재 손필대
호미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린 아들 문턱에서 맞이하며 말하는데
고삐 풀려진 소가 기장을 뜯어먹었다네.
日暮罷鋤歸    稚子迎門語
일모파서귀    치자영문어
東家不愼牛    齕盡溪邊黍
동가부신우    흘진계변서

애써 키운 개울 옆 기장을 다 뜯어 먹었다면서(田家)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세한재(歲寒齋) 손필대(孫必大:1599∼ ? )다. 원문을 의역하면 [해가 지도록 호미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 어린 아들이 문에서 나를 맞이하며 말하는구나 // 옆집인 동쪽 집에서 소의 고삐가 그만 풀려서 / 애써 키운 개울 옆 기장을 다 뜯어 먹었다면서]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한적한 어느 농가]로 번역된다. 한적한 농촌 풍경은 시적인 자연 상관물의 시상으로 일으킨 경우가 많았다. 바쁜 도심보다는 한적한 농촌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기에 시상을 떠올리기에 용이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자연과 여과濾過 없이 대화하거나 곤충이며 꽃이며 시주머니를 매만지기에 용이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시골의 꾸밈없는 전경을 한 시상으로 경치구로 엮어냈다. 해가 지도록 호미질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더니 어린 아들이 문에서 맞이하며 말한다는 극히 단조로운 시상의 끈을 풀어내고 있다. 했던 일과 들었던 일에 대한 한 소회를 엮어냈을 뿐이지만, 오늘날과 대비하면 한적한 농촌이자 질곡의 삶을 살았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화자는 시적 반전反轉의 한 도막을 엮어 농작물 손실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동쪽에 있는 옆집 소의 고삐가 그만 풀려서 애써 키운 개울 옆 기장을 다 뜯어 먹었다는 엉뚱한 시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일 년 농사를 그만 망처 버린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대반전의 시적 구성임을 알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해가 져서 집에 오니 어린 아들 하는 말이, 동쪽 집 소 고삐 풀려 키운 기장 뜯어먹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세한재(歲寒齋) 손필대(孫必大:1599∼?)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할아버지는 손원이며, 아버지는 진사 성몽열이란 분이다. 1615년(광해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1630년 공청도 도사를 지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日暮: 해가 저물다. 罷鋤歸: 호미질 하는 일을 파하고 돌아오다.  稚子: 어린 아이. 迎門語: 문 앞에서 맞이하며 말하다. // 東家: 동쪽 집. 不愼牛: 소를 매놓지 않다. 고삐가 풀리다. 齕(흘): 씹다. 뜯어먹다. 盡: 모두. 溪邊黍: 개울 옆의 기장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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