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11]

음력 삼월 삼짇날이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 구월 구일에 기러기와 한반도에서 바통 터치를 했던 제비가 다시 삼짇날을 기해서 바톤터치를 하는 것이다. 요즈음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제비들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제비들 삶의 터전이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모든 일엔 느긋하게 ‘씩’ 한 번 웃고 흘려야지,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초가집 방문 닫아걸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詠新燕(영신연) / 택당 이식
모든 일 느긋이 한 번 웃고 흘려버려
봄비는 추적추적 초가집을 걸어가고
문 밖의 제비 한 놈이 시시비비 지저귀네.
萬事悠悠一笑揮    草堂春雨掩松扉
만사유유일소휘    초당춘우엄송비
生憎簾外新歸燕    似向閒人說是非
생증렴외신귀연   사향한인설시비

마음 비운 사람에게 시시비비를 마구 지저귀네(詠新燕)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모든 일 느긋하게 ‘씩’ 한 번 웃고 흘려야지 /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초가집 방문 닫아걸었네 // 문 밖에는 날아온 제비 한 놈이 귀찮게 굴면서 / 마음 비운 사람에게 시시비비를 마구 지저귀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새봄에 찾아온 제비를 읊다]로 번역된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찾아올 사람도 없고 세상 일 잊어볼까 하고 문까지 걸어 잠갔다.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처마 밑에 날아와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지지배배 소리가 마치 시시비비是是非非라고 들렸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데 착안하여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와 반갑게 인사라도 하듯 떠들썩한 모습을 보며 반가움을 금치 못했던 그림을 그렸다. 모든 일은 느긋하고 한가하게 ‘씩’ 한 번 웃고 흘렸는데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초가집 방문을 걸어 닫았다는 시상을 꺼내들었다. 봄이 싫지는 않았겠지만 봄비의 추적추적함이 마음에 흡족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화자는 주위에 날아 든 제비들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문 밖에는 날아온 제비 한 놈이 귀찮게 굴면서 마음 비운 사람에게 시시비비를 지저귄다고 했다. 세상을 초탈한 것처럼 마음을 비웠음에도 시인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마구 이야기하고 있다는 시상이다. 제비가 우는 ‘지지배배’를 ‘시시비비’로 들을 수 있다는 우리 말 음성언어의 특징을 잘 원용하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씩 한 번 웃어보고서 초가집 방문 닫고서 제비 놈 귀찮게 굴며 시시비비 지저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택당(澤堂), 남궁외사(南宮外史), 택구거사(澤癯居士)이다. 이행의 현손, 안성의 아들, 안눌의 조카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급제, 1613년 설서를 거쳐 1616년 북평사가 되고 이듬해 선전관을 지냈다.

【한자와 어구】
萬事: 만사. 모든 일. 悠悠: 느긋하다. 一笑揮: 한 번 웃고 넘기다. 草堂: 초당. 春雨: 봄비. 掩松扉: 소나무 문을 걸다. // 生憎: 귀찮게 하다. 귀찮게 하여 밉다. 簾外: 주렴 밖. 新歸燕: 날아온 제비. 似向: 향하는 것 같다. 閒人: 한가한 사람. 說是非: 시비를 말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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