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10]

흔히 상응相應해야 한다는 말한다. 서로 뜻이 맞거나 상대의 뜻에 맞춰 본인이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뜻을 잘 알아듣고 내 뜻과 적절히 잘 맞았을 때 호응관계가 높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시의 흐름으로 보아 시인의 의도와 과거 임과의 약속은 서로 잘 맞지 않았음을 내비치는 시상을 만난다. 임 가실 제 저 달이 뜨면 다시 오신다더니, 달은 이미 떠도 그 임은 왜 안 오시는 것일까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相應(상응) / 능운
임 가실 때 달이 뜨면 오신다 하더니만
달이 떠도 그리운 임은 오시지 아니하고
아마도 임은 먼 곳에 산이 높아 늦으리오.
郞去月出來    月出郞不來
낭거월출내    월출낭불래
相應君在處    山高月出遲
상응군재처    산고월출지

산이 높아서 뜨는 달이 여기보다 더 늦은가 보다(相應)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능운(凌雲: ? ∼ ? )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임 가실 제 저 달이 뜨면 다시 오신다더니 / 달은 이미 떠도 그 임은 왜 안 오시는 것일까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임이 계신 곳은 / 산이 높아서 뜨는 달이 여기보다 더 늦은가 보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 서로 호응하여만]으로 번역된다. 흔히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상대가 의도한 방향을 맞춰 바르게 처신하면 두 사람의 뜻이 맞는다. 인간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는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것도 다 이런 상관관계 혹은 인과관계에서 비롯됨을 안다.

시인은 임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임은 오실 기척이 보이지 않는다. 임이 떠나가실 때 달이 뜨면 다시 오신다더니, 오늘 밤은 이렇게 달이 떠도 임은 왜 안 오실까라는 반문을 보낸다. 상대에게 굳이 대답을 바라는 질문은 아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은근한 시상이다.

화자는 잠시 자기 생각에 젖어 다른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위적인 생각에 몰입하는 시상을 만지작거리면서 꺼내든다.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임 계신 곳은 산이 높아 뜨는 달이 여기보다 늦을 것이란 시상이다. 임이 떠났다면 상당히 먼 거리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거리관계와는 별개다. 달을 기준으로 한 시인의 시상은 산에 가려 달이 늦게 뜬다는 달에 대한 시적인 관계일 뿐이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저 달 뜨면 오신다던 그 임은 왜 안 오실까, 아마 임이 계신 곳은 산이 높이 달이 늦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능운(凌雲: ? ∼ ? )인 여류시인으로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郞去: 임이 가다. 여기서는 ‘임이 가실 때’. 月出來: 달이 뜨면 오다. 月出: 달이 뜨다. 郞不來: 임은 오시지 않는다. // 相應: 가만히 생각하다. 임의 입장에서 ‘응대하여 생각하다’. 君在處: 임(그대)이 있는 곳에는. 山高: 산이 높다. 月出遲: 달이 더디게 뜨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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