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08]

이웃사촌이라고 했다. 한 잔 술일망정 혼자 먹지 않았다. 사대부들도 다 그랬고 취객들의 흥취 또한 그랬었다. 술병째 들고 와 권커니 잣거니 했던 것이 선현들 술 문화였다. 시인은 이웃집에 찾아온 손님(?)이었든지 이웃집에 사는 주민이었음을 관계치 않고 따라주는 정에 고마워 시 한 수 올렸으리. 시골 객은 어디서 와서 이 밤에 문을 두드리나, 그렇지만 스스로 막걸리가 술통에 차있지 않다고 말을 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謝隣客持酒來訪(사린객지주래방) / 동계 정온
시골 객이 어디에 와서 문을 두드리나
막걸리가 술통에 차지 않아 말하는데
기쁘게 술을 마시자 대숲에 달이 뜬다.
野客何從叩夜門    自言薄酒未盈樽
야객하종고야문    자언박주미영준
欣然酌罷陶然醉    脩竹無風月獨存
흔연작파도연취    수죽무풍월독존

바람도 없는 대숲에 달만 홀로 떠있구나(謝隣客持酒來訪)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골 객은 어디서 와서 이 밤에 문을 두드리나 / (그러나) 스스로 막걸리가 술통에 차있지 않다고 말하는구나 // 기쁘게 술을 마시다가 기분 좋게 취하니 / 바람도 없는 대숲에 달만 홀로 떠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이웃 객이 술을 가지고 오심을 사례하며]로 번역된다. 술에게는 벗이 많은 마력이 있다고들 한다. 혼자서 마시는 술보다는 벗과 같이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을 나누고 인생을 노래했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흥이 저절로 돋아 한 가락에 맞춰 한 곡조씩을 뽑고 나면 세상이 온통 내 것인 양 흥취에 젖기도 한다.

시인의 이웃도 막걸리 술통을 들고 밤늦게 찾아와 한 잔 술을 같이 나누자고 했던 모양이다. 시골의 어떤 객이 찾아와서 이 밤에 문을 두드리는가 싶더니 스스로 막걸리를 술통에 짊어지고 찾아와 술이 다 차지 않았다는 첫 인사말부터 했다고 했다. 비록 술이 한 병 가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이 앉아 정을 나누면서 한 잔 하자는 뜻을 보였겠다.

두 사람이 앉아 정담을 나누며 거나하게 취한 화자는 흥에 겨운 나머지 정감어린 시심을 쥐어짜듯이 우려내고 있다. 기쁘게 술을 마시다가 기분 좋게 취하니, 바람도 없는 대숲에는 달만 홀로 떠있다는 시적 상관물에 살며시 입맞춤해 보인다. 달도 두 사람의 정담을 모두 엿듣고 홀로 즐거움을 같이 했을 것이란 시상을 가만히 매만졌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시골 객이 밤에 문을 막걸리가 술통 차고, 술 마시다 취했더니 대숲 달만 홀로 떠서’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1권 4부 外 참조]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동계(桐溪), 고고자(鼓鼓子)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시강원겸설서·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1614년 부사직으로 재임하던 중 영창대군의 처형이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한자와 어구】
野客: 사골의 객. 何從: 어디서 오다. 叩夜門: 밤에 문을 두르리다. 自言: 스스로 말하다. 薄酒: 박주. 곧 술. 未盈樽: 술동이에 차 있지 않다. // 欣然: 흔연히. 酌罷: 술잔을 파하다. 陶然醉: 기분 좋게 취하다. 脩竹: 대숲. 無風: 바람이 없다. 月獨存: 달만 홀로 있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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