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수
홍천전통발효연구회 전문위원
·홍천허브·다물연구소 대표

조선왕실의 대표적 보약을 든다면 경옥고와 생맥산이다. 그런데 경옥고는 조선왕조실록에 9번 승정원일기에 358번 기록되어 있는데 생맥산(生脈散)은 조선왕조실록에 20번 승정원일기에는 무려 871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효종4년 승정원일기에 생맥산은 “하절다음(夏節茶飮) 불구첩수지약”(不拘貼數之藥)으로 묘사하고 있다. 생맥산을 왕실에서는 여름철 음료로 첩수를 제한하지 않고 마셨다는 의미이다. 요즘으로 치면 콜라 같은 트랜디한 음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맥산은 중국 금나라 때 이고(李皐)라는 의사가 저술한 동원십서(東垣十書)에 처음 등장한다. 이고는 자호(自號)를 동원노인(東垣老人) 이동원(李東垣)이라고 하였다. 이고는 유완소(劉完素), 장종정(張從正), 주진형(朱震亨)과 함께 소위 금원시대의 4대 명의로 일컬어질 정도로 의술이 출중했고 후세에 그를 대표로 하는 학파를 보비파(補脾派)라 불렀다.

생맥산은 오행(五行)의 이론에 따라 소위 ‘화극금(火剋金)’하는 것을 치료하고자 만들어진 처방이다. ‘하월염서(夏月炎暑)’라는 말처럼 여름철은 뜨거운 열기인 화(火)가 성행하는 계절인데 이럴 때엔 인체 내의 장부 중 금(金)에 해당하는 폐(肺)가 마치 불에 의해 쇠붙이가 녹아내리듯 가장 손상받기 쉽다는 생각에 착안한 것이다.

폐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인삼(人蔘), 폐열을 식히면서 진액을 보충해주는 맥문동(麥門冬), 축 쳐져 늘어진 폐를 추슬러주는 오미자(五味子)를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여름철의 열사(熱邪)에 손상되어 나타날 수 있는 폐의 허약함, 원기의 부족을 치료하고자 한 것이다. 후세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운을 돋구어주는 황기(黃芪)와 감초(甘草)를 각 4g 열기(熱氣)를 해소시키는 황백(黃栢)을 1g을 배합하여 마시면 기력과 생기가 돋는다고 하였다. 또 여름철 배탈설사의 치료에 뛰어난 향유와 백편두(白扁豆)를 추가하여 무더위 극복의 효능을 더욱 높이고자 하였다.

‘원기가 떨어졌다, 기운이 없다’는 말은 ‘맥 빠진다, 맥 풀린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맥이란 곧 원기다(脈者 元氣也).” 생맥산은 폐를 보하여 맥을 회복시키는 소위 보폐복맥(補肺復脈)하는 효능이 있는 까닭에 처방 또한 생맥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할 수 있다. 생맥산은 무더운 여름철의 열기가 폐의 원기를 손상시키는 까닭에 나타나는 전신무기력, 지나친 땀, 기침과 갈증 등을 해소시켜 줌으로써 ‘익기해서(益氣解暑)’ 즉 기운을 북돋우면서 여름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는 멋진 처방이다.

더위를 먹으면 몸이 나른하고 무기력해지고 기운이 없고 말하기가 싫다. 게다가 땀이 많이 나고 입과 목구멍, 혀가 건조해진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렇게 기운이 쫙 빠져버려서 쉽게 감기에 걸리기도 한다. 이럴 때 주로 생맥산을 쓴다. 또한 생맥산은 마른기침이나 오래된 기침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그럼 어떤 이치로 생맥산은 여름더위를 물리치는 명약이 된 걸까? 생맥산을 구성하는 약재에 그 비결이 있다.

생맥산에는 인삼, 맥문동, 오미자가 들어간다. 이 세 약재는 폐의 기운을 돕고 폐열을 식혀주며 기운을 폐로 모으는 식으로 모두 폐에 집중한다. 여름은 무더운 화(火)의 기운으로 금(金)을 헤쳐서 폐가 상하기 쉽다. 폐는 기를 주관하고 수분과 진액을 퍼뜨리는 기관이다. 인삼은 폐기를 보하는 역할을 한다. 맥문동은 폐의 음을 기르고 폐에 물을 대줘서 윤택하게 만든다. 그리고 오미자는 진액을 생기게 하고 폐기를 모아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와 진액이 회복되고 맥이 다시 충만해지는 것이다.

생맥산은 시들시들 생기를 잃어가는 오장의 맥을 팔팔하게 되살려낸다. 그래서 기력을 솟구치게 한다. 여름이라는 힘든 절기를 음식이나 약물을 통해 이겨낸다는 사유는 서양의 의학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생맥산을 통해 우리는 동양적 세계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생맥산은 단지 더위를 이기는 약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당뇨로 갈증이 극심할 때도 생맥산이 효과가 있다. 또 심부전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심계와 불면이 있으며 숨차고 땀이 그치지 않을(自汗) 때도 쓴다. 동계를 진정시키므로 부정맥에도 쓴다.

생맥산차 만들기
1, 물 2리터에 맥문동 40g, 인삼 20g을 넣고 약불에 한두 시간 정도 달인다.
2, 달인 물을 맥문동과 인삼을 걸러내고 식혀서 유리병에 담는다.
3, 식힌 달임물에 오미자 20g을 티백에 담아서 넣는다.
4, 냉장고에서 24시간 냉침한 다음 오미자를 걸러내고 마신다.
5, 오미자청이나 꿀 등을 첨가해서 마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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