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벌초는 세계 200여개 국가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풍습이다. 동양인의 한자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에도 해마다 조상 산소에 풀을 깎아주는 예법은 없다. 다만 중국 일부에서 유명인사들(두보나 백낙헌 같은 문인)의 묘는 연중 그것도 가끔 풀을 깎아주지만 우리처럼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이 좋은 날에 일가친척 가족들이 모여 조상의 묘를 깎는 예는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이 좋은 풍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미 일부의 경우에는 벌써 사라지고 있다. 산이나 산자락을 보면 옛 묘가 좋은 석물에 싸여있으나 수년 간 돌보지 않아 폐묘가 되어 흉물에 가까워 보인다. 사연인즉 그 후손들이 너무 출세(성공)해서 해외로 이민가고 국내에는 아무도 없어 그렇다고 한다. 또 국내에 거주한다고 하더라도 조상 묘를 관리 안 하는 후손들도 차츰 많아진다고 한다.

필자의 지인들 중에도 묘를 아주 파서 납골당에 넣어 영구보존하는 자들도 있고 더러는 파낸 묘의 유골을 산에 뿌려서 그 흔적 자체가 없도록 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먼 훗날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우리세대에는 그래도 벌초하는 후손들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에 대한 예의범절이 살아 있고 벌초의 날을 맞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또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벌초가 끝나면 곧 추석명절이 돌아온다. 벌초를 하고 햇곡식에 햇과일을 놓고 차례를 지내는 것도 좋은 풍습인데 이 또한 많이 변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추석날은 종가집이나 맏이네 집에서 가족이 모여 아침 차사를 모셨는데 요즘은 종가집이나 장손집이 아니라 편한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콘도라든가 별장 또는 여행가서 그 현지에서 추석차례를 지낸다고들 한다. 아무려나 추석차례를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조상들께선 고마워해야 할 처지가 됐다.

하긴 조상이 있긴 하느냐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뼈는 백골이 되고 혼(영혼)은 영원히 우주 이외의 그 먼 어디가를 떠돈다는 것이 유교나 도교의 법륜이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세상이다. 때문에 종교가 있고 철학이 있는 게 아닐까?

불교의 사상에는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지만 영혼은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의 사상으로 돼있고 기독교는 하늘나라 즉 천당이나 지옥에 간다는 신앙적 이론이다. 맞고 안 맞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수천 년 동안 동서를 막론하고 종교(신앙)가 번창하고 있지 않은가.

벌초를 할 때 필자는 여나무살 때 아버지를 졸졸 따라간 적이 있고 그 후 학교 때도 가끔은 벌초를 했다. 그 후 성인이 된 후부터는 직장에 있을 때도 연가를 내고(일요일 아닐 때)서라도 꼭 벌초에 참여했다. 10여 년 전에는 어린 편에 속했는데 이번 벌초 때는 최고령의 장손으로서 참여했다.

벌초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그 때(필자의 부모 때)는 낫을 갈아 볏짚으로 날을 싸서 손에 닿지 않도록 하고 숫돌을 별도로 챙겨 풀을 베다가 낫이 무뎌지면 갈아서 풀을 벴다. 어른들이 옆줄로 길게 늘어서서 위쪽을 깎고 풀을 뒤쪽에 놓으면 어린이들(그 때는 여인들은 안 왔음)은 그 풀을 날라다 버리곤 했다. 지금은 제초기가 7대나 되고 발동소리가 온 동네까지 퍼져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필자의 경우 벌초하는 날은 먼 친인척들이 온다. 필자의 연배는 거의 없고 그 후손들이다. 기계소리 윙윙대고 떠들썩하지만 조상님들이 헛기침하면서 “어서 와라 수고한다”라는 말 한마디 없고 초가을 하늘만 청명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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