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의 농담조가 좌중의 사람들 배를 움켜잡게 만드는 수가 많았다. 어쩌면 이것은 덕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슬쩍 던지는 한마디가 웃음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 이웃집 꼬마 녀석이 노인집의 대추를 따러 왔겠다. ‘이 녀석아, 썩 물렀거라’ 쫓아냈더니 꼬마 녀석이 도망가면서 던지는 한마디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웃집 꼬마 녀석 대추를 따러 왔는데, 늙은이가 문 나서며 꼬마를 쫓았더니 도리어 조롱조로 달아나면서 한 마디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撲棗謠(박조요) / 손곡 이달
대추 따러 왔다는데 꼬마를 쫓는구려
꼬마 외려 늙은이 소리치며 향하기를
내년에 대추 익을 때 얼마 살지 못하리.
隣家小兒來撲棗 老翁出門驅小兒
린가소아래박조 노옹출문구소아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소아환향노옹도 부급명년조숙시

내년에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 할걸요(撲棗謠)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웃 집 꼬마 녀석 대추를 따러 왔는데 / 늙은이가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 꼬마 녀석 외려 늙은이를 향해 조롱하듯이 크게 소리를 지르네 / "(영감님은) 내년에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 할걸요"]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대추를 따는 노래]로 번역된다. 대추가 어느 정도 익으면 달콤한 맛을 낸다. 바람이 불고 난 다음 날 꼬마 녀석들이 대추를 줍기도 하지만 대추를 따먹는 녀석들도 있다. 흔히 대추서리라 하여 대추를 몽땅 따가는 녀석들도 있어 할아버지가 대추지키기를 한다. 얄미운 녀석이 대추를 따러 오자 ‘네 이놈’ 하면서 꾸지람을 하자 할아버지를 골려줄 양으로 비아냥거리며 도망가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시인은 도망가는 녀석의 몇 마디 말을 듣고 배꼽을 쥐었던 모양이다. 이웃집 꼬마 녀석이 대추를 따러 왔는데, 늙은이가 문을 나서면서 꼬마를 쫓아내는 모습을 보았다. 농촌이나 산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의 한 모습을 선경先景이란 시상의 자리에 넙죽 놓았다.

화자는 꼬마 녀석이 도망가면서 하는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꼽을 쥐면서 이 시를 썼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 할걸요]라는 한 마디다. 어른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려는 뜻에서 쓰인 작품을 ‘동시 동시조’라 한다면 ‘동한시童漢詩’란 이름이라면 제격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꼬마가 대추 따러와 늙은이가 쫓는구나, 꼬마 녀석 조롱하면서 내년엔 살지 못할거면서’ 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다른 호는 동리(東里), 서담(西潭) 등으로 썼다. 이첨의 후예인 이수함과 홍주의 관기 사이에 태어났다고도 알려진다. 어머니가 천출이어서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원주 손곡으로 옮겨와 살았기에 손곡을 호로 삼았다.

【한자와 어구】
隣家: 이웃집. 小兒: 꼬마. 어린애. 來撲棗: 대추를 따러오다. 老翁: 늙은이. 出門: 문을 나서다. 驅: 쫓다. // 還: 돌아오다. 向老翁: 노인을 향하여. 道: 말하다. 이르다. 不及: 미치지 못하다. 곧 살지 못할 것이다. 明年: 내년. 棗熟時: 대추가 익을 때는. 대추 익을 무렵엔.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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