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기록원민간위원
여름 반찬의 재료로 호박만큼 좋은 게 없다. 맛도 좋고 영양분도 풍부하다. 이렇게 사람에게 이로운 식물임에도 사람들은 호박을 천하게 얘기하는 격이 있다. 잘생기지 못한 사람을 호박꽃이라 하지 않는가. 어쨌든 호박으로는 많은 요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호박과 새우젓에 대하여는 필자가 잊지 못할 유년기 때의 추억이 있다.

1952년 6.25 한국전쟁 때의 이야기다. 여름 난리 중 도시나 농촌에는 해괴한 열병이며 전염병(장질부사)인 염병이 만발했다. 병원도 없고 특효약도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이 병은 전국으로 번졌다. 지금 7~80대는 거의 다 이 염병(장질부사)에 대하여 알고 있다. 왜냐하면 가족 중 한두 명은 꼭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시골에서 초등학교 5학년인 12살 때였다. 그해 늦여름 온 동네가 염병으로 들끓고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덜컥 이 병에 걸리셨다. 원체 강인한 체격에 다부진 아버지는 이 병을 이기려고 온갖 사약과 민간요법을 강구했다. 병은 깊어 갔고 변변치 못한 음식으로 영양실조까지 들어서 입맛을 잃은 아버지는 영 식사를 못하셨다. 이때 어머니께서 새우젓을 구해서 애호박을 채 썰어 새우젓호박찌개를 만들어 아버지께 드렸다. 여기에 입맛을 찾은 아버지는 때마다 호박새우젓찌개만 찾았다.

얼마 후 병이 웬만큼 호전된 후였다. 하루는 아침을 먹는데 아버지께서 “오늘 호박새우젓찌개는 맛이 덜하네” 하셨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그걸 이제야 아셨수? 벌써부터 새우젓이 떨어져 호박만 넣었는데” 하셨다. 아버지는 “어쩐지 맛이 덜하더라”며 씨익 웃었다.

한여름 동안 번지던 전염병 장질부사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자 멈췄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특효약이 암암리에 공급되어 퇴치가 됐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병이 한집안에 한명은 전혀 전염되지 않았다. 필자의 집에서도 어머니께서만은 이 병을 앓지 않고 가족을 돌보셨다. 그래서 돌은 얘기가 이 병이 가족들을 돌보라고 한명에게는 전염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 후부터 우리 집 여름반찬 중에 애호박새우젓찌개는 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 까지 전수됐고 요즘도 가끔씩 맛있게 먹고 있다. 당시의 이 병은 중공군이 세균전으로 퍼뜨렸다는 소식도 있고 북한쪽에서 전염됐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발병 자체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휴전이 된지 64년이 된 지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병중에 들지도 못하는 병이고 전혀 발병되지도 않은 휴면적 전염병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년전 지인의 부인이 원인모를 열병에 걸려 지방병원에 입원을 했으나 낫지 않아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입원을 몇 주씩이나 했는데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이 2~3개월을 시름시름 앓았다.

지인은 모의사의 권유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서 진단을 받은 결과 담당의사는 고개를 갸웃대더니 장질부사라고 진단하며 처방전을 써줬고 3일 만에 쾌유됐다. 그 의사는 자취를 감췄던 장질부사가 마치 희귀병처럼 나타나서 여타 병원에서는 차원 높은 검사만 했지 64년 전 유행했던 염병균인지는 미처 몰랐다는 얘기였다.

올봄 필자는 매년 그랬듯이 지인의 집에서 얻은 호박모종 두서너 포기를 담장 밑에 심고 요즘 따서 애호박새우젓찌개를 해먹는다. 다만 찌개를 끓여주던 어머니도 당신의 며느리도 없는 세상에서 애호박새우젓찌개로 밋밋한 여름입맛을 돋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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