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미 메이저 신문사의 응모마감일은 지나갔고 지방 신문사를 비롯해 중앙 일간지 몇 군데의 마감일이 남아 있긴 하다. 삶이니 문학이니 거창한 명제들을 끄집어내고 보니, 지금껏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문학이다’ 라고 스스로 평가해 왔다는 결론이 선다.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오면 절로 혼자 설렜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작품을 낼 수 있을 만한 시간의 여유와 실력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그렇다보니 우연히 지난해 단편소설에 딱 한 번 응시해보고, 5월엔 창작과 비평사에 시를 5편 보낸 것이 나의 공적인 응모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가 보니 어떤 경로로든 시인에 등단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것을 알았다. 술자리마다 혹은 공식 행사 자리마다 행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나는 아니꼬웠다. 지금껏 계속 속으로 무시하면서 언젠가 나는 반드시 메이저급으로 등단할 것이라는 야심을 감추고 살았다.

그런데 올해 마지막 달을 보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실 이런 나의 감추어진 발톱은 ‘헛된 야망’이었다는 깊은 깨달음이 왔다. 또한 시간의 문제에 대한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항상 시간 계산과 시간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다. 벌여놓은 일이 산적해 있어도 금방 다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서 지내 왔다.

막상 학교에 다니면서 가게의 물건을 팔면서 자주 지리산 아래 산내마을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소위 ‘절대시간’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버티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너무 놀라서 침대에 누웠더니 전신이 어릴 적 ‘회전그네’를 탄 듯 초속 50미터로 빙빙 돌았다. 어지럼증이 주는 두려움은 어마어마했다.

지금은 약간 나아졌지만 지속되고 있다. 나는 병원에 가는 대신 한약 한 재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잠을 잤다. 며칠 새 빙빙 도는 어지럼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의욕이 없고, 약간의 현기증이 계속 따라 다닌다. 오늘 아침 검색해보니 어지럼증을 단순한 빈혈로 자가진단하고 방치할 경우 큰 병의 전조일 수 있는데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밤새 책을 끌어안고는 잤다. 잠이 오면 잤다. 이제 절대시간의 개념을 항상 염두에 두고 몸이 무리하지 않는 계획을 짜고 실천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만큼만 하기로 했다. 어지럽다는 말이 자꾸 입에서 튀어 나온다.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고 정말로 핑하고 어지러울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아~구 어지러워!” 이런 식이다. “아우, 추워!”, “아우, 더워!”랑 같은 형태의 말이다.

그런데 내 언니의 반응이 주목할 만했다. “어휴, 저 놈의 어지럽다는 소리!” 그만 어지러우라고 뻘건 선혈 떨어지는 소의 간을 사준 것도 아니고, 멸치볶음을 해 주지도 않으면서 1주일 만에 벌써 타박이다. 자기 아들이 어지럽다고 했으면 두 눈 새빨개져서 이 병원 저 병원 막 쫒아 다녔을텐데......

내가 탄 이 배는 자주 파랑에 흔들린다. 왜냐면 ‘나’라는 선장이 너무 중심이 없어서 이다. 중심도 없는데, 혹여 몸이 아파 자리보전이라도 하면 우리 배는 바로 가라앉을 것이다. 이 배엔 연약한 내 아들과 천지분간 못하는 스무 살 딸이 타고 있다. 건강한 삶을 스스로 챙겨봐야겠다. 남한테 미룰 거 뭐 있나?!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