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식 시인, 전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민간기록원
지난번에 이어 입지전적인 홍천의 인물들을 찾아보았다. 지난 호에서도 기고하였듯이 이 인물논은 크게 성공한 인물들만 소개한 것이 아니다. 재력도 많지 않고 사회적으로 많이 안 알려졌더라도 우리 지역에서 모범적이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얘기다.

이번에는 홍천읍 결운리의 안기혁 묘목 농장주다. 안기혁씨는 현재 묘목생산의 농장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홍천군산림조합 묘목관리장이었다. 결운리 그의 묘목장에는 수십 종의 묘목들이 자라고 일부는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 안기혁씨는 홍천읍 결운리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도시에서 보내고 직장이 여의치 않아 귀향하여 농장을 운영했다. 처음에는 농토를 임대해 비닐하우스에 특수농업인 멜론을 재배해 성공을 했고 그 후에 계속적 영농을 위해 해외연수(일본 등)를 다녀오고 멜론이외 타 종목의 연구를 거듭해서 종자생산과 묘목생산에 전념하게 됐다. 안기혁씨가 성공하기까지에는 아내의 내조가 크게 힘이 됐다고 늘 칭송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이은무 시인이다. 이시인은 홍천출신으로 홍천읍에서 태어나 홍천초교와 홍중 졸업 후 문학수업을 독학으로 했으며 조그마한 점포(골목마트)를 운영하며 많은 동생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동생들은 성인이 된 후 분가하고 지금은 춘천시 근화동 근화초교 정문 앞에서 부인과 점포를 운영하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 필자의 지인이기도 한 이시인을 입지전적인 자수성가인으로 평하게 된 것은 그 인품에 반해서다. 입이 무겁고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고 사는 대표적인 시인이기 때문이다. 순수문학시인으로 현대문학지로 등단해 시집 6권을 내고 있다. 자녀는 남매로 딸은 대학졸업 후 결혼해 중국에 가있고 아들은 강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다음으로는 석도익 회장이다. 석회장은 현 홍천문인협회 회장과 바르게살기협의회 홍천군회장이고 궁도협회 회원과 장학회 간사 등도 맡고 있으며 전 홍천문화예술연합회장을 맡기도 했다. 석회장 역시 빈곤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홍천군 북방면이 그의 고향이다.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으로 인해 정규교육을 지양하고 독학과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친 석회장은 20대 초반에 이미 새마을재건 중학교를 설립해 본인이 이루지 못한 배움의 꿈을 농촌청소년들에게 배양했다. 교사와 운영을 겸해 봉사하던 석회장은 군대 만기제대 후 금융기관(전 도민저축은행)에 입사 20여년을 근무하고 퇴직하였으며 홍천새마을금고 감사 등을 역임했다. 늘 너털웃음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주변 지인들을 즐겁게 하며 소설과 수필 등 장르를 초월한 문인으로 평가받으며 지난해에는 홍천군 향토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번에는 농업분야에서 자수성가한 장년의 허남영 홍천농고총동창회장이다. 허회장은 동면 개운리에서 태어났다. 소농의 집에서 자라 속초초교와 동화중학교 졸업 후 읍내의 홍천농고를 졸업하고 공직을 경험한 바 없이 바로 경종농업에 투신하기로 했다. 많은 농민이 그러하듯 농촌에서는 많지 않은 영농규모로 희망이 안 보이는 막막한 농촌생활이 이어진다. 30여 년 전 우리의 농촌은 대형농기구가 한창 들어올 때였다. 허회장은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농협으로부터 대형트랙터를 구입했다. 물론 융자와 자부담이 많이 들었다. 이 트랙터로 내 집 영농만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은 농토였다. 주로 이웃과 남의 농토를 대신 갈아주고 임대료를 받았으나 여의치 않아 빚만 늘었다. 이 무렵 허회장에게 기회가 왔다. 인삼농사였다. 평소부터 성실함에는 으뜸인 허회장은 인삼농사를 시작했다. 홍천인삼은 기후조건이 알맞은 6년근 홍삼원료의 생산지이며 이는 전국 최고의 품질이다. 인삼기술과 경영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허남영 회장은 인삼보급에 앞설 뿐만 아니라 지인들과 함께 홍천6년근인삼 생산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는 흔치않은 영농인의 성공적 인물로 칭송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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