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은 수분이 80%라고 한다. 산소와 물이 없으면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몸이다. 요즈음처럼 상수도가 발달하기전 홍천읍 즉 시내의 사람들은 물 해결을 어떻게 했을까? 1960년을 전후해서 홍천읍내에는 앉아서 바가지로 뜨던 샘물이 여러 곳에 있었다. 물론 두레우물과 펌프 등도 있었고 화양강물을 드럼통에 넣어 물배달하는 직업인도 몇 명 있어 음식점에서 주로 이용했지만 필자가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땅속에서 직접 나오는 샘물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현재 홍천향교 앞 우물이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덮여졌지만 70년대 중반까지 이곳에 샘물이 있었다. 두양식당 서편(외갓댁 식당 북서쪽)쪽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수돗물 두 세배 정도의 수량이 나오던 샘물로 이 당시 홍천중·고교를 다닌 자면 누구나 기억이 생생한 우물이다. 두 번째는 홍천관광호텔 북서쪽 뒤편 약 100m지점으로 현 홍천막국수 남쪽 50m쯤의 샘물이다. 이 샘물은 주택이 밀집된 곳으로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세 번째는 진리축협 서쪽 자전거대리점과 현대여인숙과 한식당 터에 제법 수량이 많아 수돗물의 열배쯤 나오던 샘물이 있었다. 이 물은 홍천읍내의 많은 사람들과 인근의 농지(현 통영굴밥식당)에서 농업용수로까지 이용했으며 특히 근처의 두부공장까지도 이 물을 이용했을 만큼 수량이 풍부하였다. 네 번째는 경포대횟집 후문 큰 도로 건너 현재 뽀뽀스낵 건물 터의 샘물이다. 이 샘물 주변에는 장미넝쿨이 있어 장미샘물이라고도 했고 그 반대편 우봉장학회 건물 남쪽 김가네냉면 안마당 쪽에 역시 떠먹는 샘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시내를 조금 벗어난 지금의 희망어린이집 앞 공터 밑에도 샘물이 있었고 구인당한약방(진리 미륵당) 뒤 엘림빌라 앞 공터에도 맑은 샘물이 있었다. 세방주유소 북동쪽 100m쯤 흙돼지식당 밑 세방마트 뒤켠에도 역시 샘물이 있었는데 이곳의 수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갈마곡리(샘통골 입구)에도 몇 개의 샘물이 있었는데 특히 닭바위에는 옻샘물이라 하여 현재 소방서 남쪽 100m거리의 사철탕식당 앞 코너에 있었으며(현 화물차중앙검사대 앞) 수량도 많고 물이 차가워서 여름에도 발을 담글 수가 없었다.
   연봉리 쪽에는 지금의 추송식당 밑에 샘터가 있었고 동국주유소 남쪽 남산초교 정문 앞 서쪽 50m쯤 향나무 밑에 역시 샘물이 있었다.
   이밖에도 더러 있었겠지만 필자가 직접 먹어보고 이야기 듣던 샘물은 이정도 밖에 알 수가 없다.
   샘물이 있었던 자리가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한때는 우리의 육체를 유지시켜 주던 수분의 공급처로 후세의 홍천군민들이 홍천읍내에도 이런 샘물터가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보았다.    
강정식 시인, 전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민간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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