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마치 웃너븐터(웃높은터)'에서 내려오면 '논골'이다. 푯대봉을 사이에 두고 '솔골재(귀영고개)'물과 합쳐 개울을 이룬다. 
  개울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간다.
  대개 개울 따라 길이 나기 마련인데 '높은터'는 비탈을 끼고 길이 났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길. 이 길을 걸어다녔을 그 시절은 하루해가 얼마나 짧았을까?
  그때 그 시절 삼창초등학교 분교장에 다녔던 아이들은 지금은 오십대의 중년이 되었지만 '샘말' 개울에서 개구리 잡고 가재와 물고기를 잡아먹던 추억을 들추어내곤 한다.
  학교가 자리 잡았던 샘말은 샘이 많이 났다. 그 당시에 샘이 났다는 것은 골짜기에서도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벼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까닭에 밭만 보이던 '웃너븐터'와는 달리 '아래너븐터'는 논이 많다.
  '뱅대이골 '어귀와 '박쥐골'을 지나 내려오는 개울에는 보를 막아 물을 끌어왔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부동산 열풍이 불면서 물이 맑고 깨끗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왔고, 전원주택지로 소문이 났다. 소문만 무성했지 실제 마을로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교에서 내려오다 보면 '지덕사' 뒤로 이어지는 골짜기는 '서라태골'이고 건너편 능선은' 뒷덕'이다. 뒷덕이 감싸 안은 마을이 '높은터 아랫말'과 '안흥'이다. 아랫말에서 안흥으로 내려가는 길은 내리받이로 상당한 고도를 느끼게 한다.
  아랫말은 마을의 중심이다. 마을 한가운데 경로당과 마을회관이 있고,  전통방식의 찜질방이 있다.
  처음 개장을 했을 때는 전통 가마를 이용한 찜질방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접근성이 떨어져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지만  '홍천컨트리클럽'이 개장하면서 지금은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홍천컨트리 클럽'은 봉화산을 중심으로 뒷덕 산비탈에 자리를 잡았다. 홍천컨트리클럽(대표 박예식)은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장전평리 산223-1번지 일원에 18홀 파72 861.440㎡부지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송호 골프디자인이 설계하였다.
  '홍천군의 보존된 자연을 잘 살려 도심 속을 벗어나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생활에 새로운 활력소를 넣어 주기 위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율과 감동이 넘치고 자연을 마음껏 품을 수 있는 골프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골프장 건설을 우직스럽게 고집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각각의 홀마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그대로 살려 깎아지른 절벽과 울창한 원시림 나무들 속으로 펼쳐진 코스는 국제규격을 능가하는 난이도와 웅장한 규모는 내장객들에게 골프의 묘미를 더해준다. 특히 각 홀 마다 페어웨이의 공략이 틀리고 업(UP)다운(DOWN)이 있어 골프인들이 깊이 생각하고 코스 공략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쉽게 좋은 스코어를 용납하지 않는 홀들이 즐비해 경기 시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어 자연에 대한 도전과 순응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
  다만 안개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덕스런 날씨를 극복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골프장에서 바라보는 '봉화산'과 '독골의 더렁산, 갈골을 품은 '매화산'은 산자수려하다.
  난생 처음 골프장에 들어와 본 소감은 청량감이다. 산과 나무와 호수와 그리고 잘 다듬어진 잔디 위로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가 마음을 씻어준다.
  뒷덕 아래 수채골을 돌아내려오면서 골프라는 이질감이 동질감으로 바뀌는 데는 두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적 빈곤감에서 오는 소외감과 도시와 농촌의 삶의 불균형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최소화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 되었다. 
  '독골'은 '아래너븐터'와 '장전평'의 경계를 이루는 골이다. 독(항아리)을 만들었던 터가 남아있고, 골 안으로 들어서면 '안독골'과 '시동'으로 넘는 고갯길이 남아있다.
  삼마치(아랫너븐터)를 돌아 내려오면 '안흥'이다. 마을이 아늑하다. 일찍이 순흥 안씨들이 터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마을이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나갔다 한다.
  골프장이 들어선 곳은 바로 '안흥'이다. '봉화산'이 서쪽에 우뚝 솟아있다.
  '실성사'가 자리잡은 '큰절골'을 지나 '외먹실', '안밭골', '두먹골', '작은절골'을 지나 내려오면 옛 '봉산분교(폐교)'터가 나온다. 길은 봉화산 밑자락을 끼고 돌고 길 아래로 하천들이 펼쳐진다.
  건너편으로 석광산을 개발한 흔적이 남아있는 어귀를 지나 들어서면 '갈골'이다. 갈골 막치미는 '숯가마골'로 이어지고 고개를 넘으면 시동이 나온다.
오안리와 장전평리를 가르는 둔덕은 '개암둔지'다. 개암둔지와 양지말을 잇는 노루목 고갯마루에 보혜사 이정표가 서있고 이정표를 따라가면 개울가에 마르세봉이라는 음식점이 나온다. 보혜사는 매화산 생태체험장 휴양소 어귀에 자리한 신흥사찰이다.
  너븐터에서 흘러내린 물이 제법 물소리를 내며 개암둔지 앞을 之(갈지)자로 감돌아 흐른다. 
  노루목고개를 돌아 양지말로 들어선다. 개울 건너편으로 음식점들이 자리를 잡았다.
  '양지말'은 홍천의 대표적 먹거리 단지다. 서울에서 양덕원을 지나 며느리고개를 넘으면 고기 굽는 냄새로 발길을 잡는다. 간판마다 원조라는 말을 붙여놓았지만 어느 집 할 것 없이 맛있다. 주 메뉴는 돼지고기 화로숯불구이다. 주말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맛으로 소문난 곳이다. 
  화로숯불구이 맛의 비결은 연한 육질의 돼지고기와 양념, 그리고 시골스런 무쇠화로의 참나무 숯불에 있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에 열 가지도 넘는 양념을 섞어 재운 뒤 숙성기간을 거친 다음, 큰 무쇠 화롯불에 담긴 참나무 숯불에 구워 먹으면 된다.
  맛을 좌우하는 것은 육질이 부드럽고 연한 최상급의 돼지고기다. 여기에 묵은 고추장과 토종꿀 등 알맞은 비율의 양념을 버무려 숙성시키면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깔끔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후식으로 곁들이는 촌두부와 막국수도 옛날 시골 어머님이 해주시던 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또한 별미이다. 마을 전체가 연기에 자욱하다. 양지말 개울을 중심으로 상오안리와 하오안리로 나뉘지만 화로숯불구이는 개울양편에 자리하고 있다.
  상오안리는 며느리 고개를 사이에 두고 남면 월천리와 등을 맞대고 있고 하오안리는 삼마치개울을 경계로 연봉과 맞닿아 있다.
  '오안천'은 매화산의 한 줄기인 공골에서 시작된다. 공골안으로 들어가면 갈골과 가막골로 갈라지고 임도를 따라 갈골로 이어지는 매화산 휴양소와 며느리고개로 이어지는 임도로 갈라진다. 며느리고개로 이어지는 임도는 국유림관리소에서 매화산을 찾는 등산객들을 위하여 편의시설과 숲 생태 체험로를 개설하여 산행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갈골'과 '호랑박골', '가막골'에서 흘러내린 물은 저수지에서 머문다. 겨울이면 빙어낚시로 찾는 이들도 많다. 특히 홍천의 대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시원한 손맛을 느끼려 이른 봄부터  낚시를 드리우고 기다린다. '공골저수지'가 생긴 이후로 상오안리의 버덩은 물 걱정에서 벗어났다.
  매화산을 중심으로 가락골의 법흥사와 호랑박골의 도원사가 수도도량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골에서는 '갈골고개'를 넘어 장을 보러 다녔다. 고개를 넘으면 양지말이다. 양지말 먹거리단지에서 매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있어 먹거리와 산행의 멋을 즐길 수 있다. 맛을 느끼고 멋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테마로드'가 만들어진 셈이다.
  아직 공골에서 갈골 매화산 휴양소로 이어지는 길은 꼬불꼬불한 산길이지만 오얏골, 덕망골 횟골, 작은절골, 큰절골을 지나는 골짜기는 자연 그대로여서 걸을만하다. 산을 찾는 길이라면 도원사를 둘러보고 호랑박골로 들어서서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며느리고개로 이어지는 임도와 외솔재기를 지나 작은고개를 넘어 갈골로 이어지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매화산 산림 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권하고 싶다. 
  최근에는 매화산이 등산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어 하오안리 주민들은 매화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촌체험마을을 이루고 있는 토종꿀 체험단지와 자연산 버섯단지를 비롯하여 산림욕장을 통하여 자연속의 삶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수지를 돌아 내려오다보면 '여내터골', '막내터골'을 지나 서낭당을 만나게 된다. '말가지골'과 '굴바위골 '어귀에 서있는 서낭당은 아직도 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믿음을 주고 있으며, 특히 바위골에는 천연동굴이 있어 매화산 등산로의 새로운 산책로가 될 것이다.
  서낭당을 돌아 '짚은계곡', '쇠덕골'을 지나면 '가게둔지'다. '가게둔지'는 '새술막', '신주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며느리고개 밑이 된다. 이곳에는 주막이 생기면서 붙여진 지명으로 지금도 주유소와 휴게소,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구 며느리고개'는 '삼막골' 어귀를 지나 매화산의 한 능선을 넘어 '월천리 요골'로 이어지는 고개다. 지금은 터널이 있어 눈 깜짝할 새에 고개를 넘게 되지만 예전에는 험난했다.
  '며느리고개의 전설'에는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등장한다.
  옛날 어느 해 봄, 고개 넘어 외떨어진 고갯길을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나귀등에 짐을 싣고 걷고 있었다. 사돈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수목이 울창한 고갯길을 걸어 서낭당이 자리잡은 고갯마루에 이르렀을 때 시아버지는 나귀등에 얹은 짚신꾸러미가 없어진 것을 보고 며느리에게, “아가야, 짚신을 잃어버렸으니 내가 찾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하고 나귀를 돌려세워 고개를 되돌아 내려왔다. 그러나 짚신은 없었다. 시아버지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 부랴부랴 며느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되돌아 온 시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기다리고 있어야 할 며느리가 없었다. 시아버지는 해 저문 골짜기를 향해 “아가야, 아가야”하고 목이 터져라 부르며 산길을 헤맸다. 아무리 불러도 시아버지의 애절한 목소리만 산울림이 되어 돌아올 뿐 어둠이 깔린 고개는 조용하기만 했다.
  간간이 짐승들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며느리 목소리가 아닌가 하고 귀를 기울였으나 허사였다. 시아버지는 발길을 돌리려고 나귀 고삐를 잡아 당겼으나 이상하게도 나귀 발굽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당겨도 떨어지지 않아 할 수 없이 나귀를 뒤에 두고 고갯길을 넘어왔다. 그 후 며느리는 산도적에게 잡혀갔다기도 하고 맹수에게 잡혀 먹혔다고도 하는 말만 전해질 뿐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부터 이 고개를「며느리 고개」라 불렀다 한다. 언제부터인가 혼사를 치르러 가는 행렬이 이 고개 마루턱에 이르면 나귀 발굽이 떨어지지 않거나 며느리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전해 온다. 이런 연유 때문에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인데도 이 고개를 넘지 않고 60리 길을 돌아 다닌다고한다.
  '며느리고개'에서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임도에 매화산 산행의 안내판이 서있고 좀 더 내려오면 '삼막골'이다. 삼막골 어귀에는 재활용자원재생센터가 자리하고 있고 골 안막으로 들어가면 호랑바위골, 목탁바우골, 설통바위골로 이어진다.
  '새술막'은 주막거리로 길이 만나고 골짜기가 모이는 곳이다. '공골'과 '삼막골', '장승배기', '면악골'의 물줄기가 합쳐지고 다시 '은로골'의 복상나무골 버서지골 바른골의 물줄기가 모여 개울다운 모습을 갖춘다.  그 개울은 '농막뜰'을 가로지르며 '웃뭇골', '밤나무골'의 물줄기와 '양지말 개울'( 너븐터-안흥 먹실 갈골)과 만나 하오안리로 이어진다.
  93년 12만 6,670여㎡규모의 공단을 조성 현재 18개업체가 가동중인 홍천 상오안농공단지는 쌍자리골, 증개골 ,막터골로 이어지는 둔덕에 44번국도와 중앙고속도로의 지리적 잇점을 살려 조성되었다. 농공단지 앞에는 강원홍천인삼조합이 자리하고 있으며, 매년 10월 초순에 홍천 인삼축제가 이곳을 중심으로 개최되고 있다. 인삼은 그 형태가 사람을 닮아 사람을 살리는 약초라고 알려져 있다. 인삼에는 아미노산, 비타민, 사포닌, 회분, 인, 칼륨, 철분 등 유효 약용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허약체질 개선에 효과가 뛰어나다.
  특히 홍천은 생육 환경이 적합한 청정지역에서 재배되어 그 품질이 뛰어나며, 도내 6년근 생산량의 38%를 차지하는 6년근 인삼의 주산지 이다. 지리적으로 일교차가 커서 인삼조직이 치밀하여 가공 시 수율이 높아 넓고 깊은 인삼의 효능을 느낄 수 있다.
  홍천인삼축제는 웰빙 시대를 맞이하여 건강을 위한 영약의 대명사인 인삼을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특히 인삼을 직접 캐보고, 인삼을 이용한 갖가지 요리를 시식해보고, 인삼의 모든 것을 배워보는 등 흥미로움이 가득한 체험을 직접 할 수 있는 축제다.   
  양지말을 중심으로 한 버덩의 옛 지명은 '갱둔지'였지만 양지말 회로 숯불구이먹거리촌으로 홍천의 대명사가 되었다.
  중앙고속도로와 동서 민자고속도로 그리고 44번 국도가 만나는 오안리를 중심으로 홍천의 인삼과 양지말 화로숯불구이, 그리고 매화산과 골프장이 어우러져 스쳐지나가는 길목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머물다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양짓말 고개마루에는 큰 서낭당이 서있었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홍천의 또 하나 명물 감자떡(용가네 식품 대표 용영배)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강원도 감자바우라는 별명에 걸맞게 손으로 빚은 홍천감자떡은 감자를 깊은 항아리에 담아 완전히 썩힌 다음 냄새가 나지 않게 손질한 가루를 가지고 만든 떡으로 맛이 소박하고 구수하다. 특히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맛도 일품이지만 옛날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다시 돌아 오안초등학교 앞길로 걸어간다.
  오안초등학교와 판사곡 사이에는 산 능선이 이어져 고개를 이루었는데 이곳에는 서낭당이 있었다. 그래서 서낭당고개란 이름이 남아있다. 이곳을 오리나무정이라고 하는데 오리나무가 많았다.
  오리나무는 우리 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소월은 산새가 두메산골 영 넘어 가려고 오리나무에 앉아 운다고 했고, 농요에서는 ‘십리 절반 오리나무’라 노래 불렀다. 옛날에는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오리마다 오리나무 숲을 조성하여 이정표로 삼았다고 한다.
  오리나무를 한자로는 유리목(楡理木), 적양(赤陽)이라고도 하고, 중국은 차조(茶條)라 했다. 껍질이나 열매에 탄닌이 함유되어 붉은 색과 검은 갈색의 염료로 쓰여 물감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리나무는 콩과식물처럼 근류균이 생기므로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비료목으로 중요시 했으며 잘 자라 둑을 보호하는 사방목으로 쓰였다. 옛날 시골에서 가지를 지팡이나 지게 작대기, 연장 자루로 이용했다. 쉽게 트지 않는 이점을 살려 나막신과 얼레빗, 상감, 집기류의 밑그릇으로 만들어 옻칠을 입히는 기초 재료가 됐다. 숯은 화력이 강해 화약을 만드는 데도 썼고 대장간의 풀무불 숯으로도 귀중하게 쓰였다.
  보혈약으로 썼고, 간에 쌓인 독을 풀고 간을 보호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며, 용왕께 제사지낼 때 오리나무로 성목(姓木: 남근)을 깎아 바쳤다. 바다를 여신으로 봤기 때문에 앙칼진 여신을 달래는 것은 남성기와 똑같은 신목(腎木)을 깎아 바다에 넣어 주어 파도를 잠재울 수 있다고 믿었다. 안동 하회 별신굿놀이의 하회탈을 오리나무로 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리나무정'을 돌아 개울을 건너면 '느새울(도새울')어귀다. 골안으로 들어서면 고개가 둘이 나오는데 큰고개, 작은 고개다. 큰고개를 넘으면 도새울로 이어지고 작은 고개로 들어서면 귀촌한 화가 부부가 산다.
'느새울'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여내골 어귀인데 골막에서 도새울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다. 지장밭골, 숯가마골, 피나무골, 구렁이터골, 오소리골을 지나면 여내골 막치미로 들어서게 되는데 작은 여내골의 평풍바위와 깍은봉 아래의 폭포수는 여내골의 자랑거리다.
경로당을 지나 강을 따라 내려가면 느리울이다. 느리울은 홍천용씨 세가의 선영과 사당이 있었으나 동면 덕치 단봉산으로 옮기고, 지금은 그 어귀에 장례식장과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섰다.
  아직은 입·출입도로가 협소하여 개선이 요구되고 있는 길을 돌아 나와 '둔지모텡이' 네거리로 들어섰다. 다리를 건너면 '북방 하화계리 새둔지'이고 길을 따라 오르면 '연봉 검문소 배무기, 서쪽으로 내려가면 '서울 방향 양지말이다. 
  홍천의 옥수수축제 한마당이 열리는 '구시울'앞 버덩은 교통의 편리함 때문에 오안리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삼호아파트뒤 구시울(구곡 구실)은 마을 사람들의 등산로이자 산책길이다. 열산골로 넘는 고갯길이 있고  약수터를 지나 둔짐산 정상에 오르면 홍천시내 뿐만 아니라 홍천을 감도는 화양강의 자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봉화산과 매화산을 잇는 임도는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의 추천 코스가 되고 산을 내려가면 화양강의 물소리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오안리.
  공골(貢谷)과 삼마치 너븐터(높은터)에서 시작된 오안천이 송학정을 돌아 흐르는 화양강 푸른 물소리에 섞여  소단리 여울로 흘러간다.
  강은 이제 탄주를 하며 재즈 같은 여운을 남긴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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