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미래를 열다[2]

홍천은 지역에서 키운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구조이다. 아이를 고등학교까지 키워서 수도권과 근교 도시의 대학으로 내보내기 바쁘다. 인구정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면서 정작 자식은 내보내고 귀농 귀촌인을 환영하는 현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성남에서 만난 한 친구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차마 고향으로 가기가 두렵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무섭지만 무엇보다 자기 부모가 가장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마치 그 자랑스러웠던 자식이 패배자가 되어 돌아온 기분이랄까. 농촌은 도시에 계속 사람을 내주고 좋은 일자리도 인재도 없는 빈곤의 악순환에 계속 허덕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도시의 선진 문물을 배워서 돌아와 지역에 기여하는 문화와 일자리 구조를 만들기는 어려운 것일까? 여기 세계적인 협동조합의 도시 몬드라곤이 있게 한 호세 마리아 신부의 사례가 있다.  

2019년 한신대 사회혁신 대학원 연수로 방문했던 스페인 몬드라곤의 첫인상은 첩첩산중으로 고립된 산간 도시의 느낌이었다.  바스크 민족에 대한 핍박, 프랑코 정부의 정치 문화적 탄압, 노동환경의 악조건 속에서 몬드라곤은 어떻게 세계적인 협동조합의 도시가 되었을까? 

세계적인 협동조합의 도시 스페인 몬드라곤
세계적인 협동조합의 도시 스페인 몬드라곤

오늘날의 몬드라곤이 있게 한 많은 요인 중에서 나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싶다. 1941년 26세의 나이로 몬드라곤에 부임한 호세 마리아 신부는 36년간 열악한 지역의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수많은 사회활동 조직을 만들고 이끌었으며 2,000개가 넘는 학습조직을 만들었다. 신부는 제자들을 타 지역에 보내 교육시켜 몬드라곤 지역으로 돌아와 리더의 역할을 하도록 키워냈다. 이렇게 성장한 제자들과 함께 부임 15년 만에 100여 명의 주민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협동조합 울고(ULGOR)를 창립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공동체와 주민의 삶을 고양하며 지역과 사회를 개선하는데 있다. 인재 양성과 커뮤니티 복원, 사람들의 관계망을 토대로 자본 이익이나 기업가치 증식이 아니라 ‘지역을 위한 연대와 협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역이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배우고, 사람을 키우고, 연대해야 한다. 장사가 안 되어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들은 협동의 방식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상상한다. 예를 들어 꽃집을 운영한다면 다섯 꽃집이 모여 꽃을 함께 매입해서 가격을 낮추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연구모임을 하면서 포장, 가게 진열, 꽃 소비의 트렌드를 배우고 연구한다. 이런 과정에서 서비스의 만족도를 높이고 가격을 낮추면서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2007년 프랑스에서는 아마존과 같은 대형 기업이 등장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서점주 몇몇이 100여 명의 작은 서점주들을 설득해 상업협동조합을 만들었다. 5년 후 이 네트워크는 프랑스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하고 8%의 성장률을 보였다.  

물론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가치를 세우고 믿는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유용한 수단이나 방법을 나누고, 자기에게 당장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공동 행동에 참여하는 민주적이고 연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곳곳에서 솟아나는 이 힘들이 지역을 활기 있게 하고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한 번쯤은 자부심을 느끼고 살고 싶다. 이제, 우리 자조 말고 자부심을 만들어가자! 

◀박지선 예비사회적기업 ‘상상너머’ 대표/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홍천상생네트워크 회장, 성남여성회지부장, 성남태평동작은도서관 실장 역임/저서 ‘홍천엄마의 그림일기 나에게 로컬을 선물했다’/공저 ‘포틀랜드 로컬과 혁신이 만나는 도시’, ‘빌바로 몬드라곤 바르셀로나 도시,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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