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미래를 열다[1]

경기도 성남에서 35년간 살다가 홍천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다. 성남은 1970년대에 서울 청계천 주변의 무허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다. 이후 분당, 판교 개발까지 우리나라 계획도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성남의 원도심은 트럭에 실려 온 1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산언저리 나무만 겨우 베어 놓고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는 황무지에 일군 도시로 한때 빈민과 저소득층 도시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이곳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 도시를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했다. 떠나는 것이 꿈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불안감을 준다. 함께 미래의 ‘무엇’을 도모하기도 어렵다. 직장과 집을 따라 쉽게, 자주 이주하며 이별이 익숙한 사람들은 마주보는 집에 살면서도 이웃의 얼굴을 못보고 살기도 한다. 집값이 올라가고 정주여건이 불안해지면 이 헤어짐의 주기는 점점 빨라진다. 

물론 회색빛 도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이주민이다 보니 그 중에서도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면 친 형제자매를 만난 것 같은 혈육의 정을 느끼기도 하고, 골목 평상에 엄마들이 모여 함께 아이를 키우고 먹거리를 나누기도 하며 의지하며 지내기도 한다. 성남에서 살면서 느낀 이 양가감정은 사람이 사는 ‘좋은 환경’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다. 

아무것도 없으면 함께 만들어가자! 홍천 마을교육연구회가 주최한 작가강연. ​​​​​​​크고 작은 공부모임은 지역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함께 만들어가자! 홍천 마을교육연구회가 주최한 작가강연. ​​​​​​​크고 작은 공부모임은 지역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평생 더 좋은 곳만 바라보며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역을 외면하기 보다 떠날 수 없다면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골목에서 사라진 ‘평상’을 대신할 여성단체, 마을공동체 만들기, 작은도서관 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취미, 정서, 생각을 공유하다 점차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경제적 조건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도 공부했다. 

그 ‘평상’에서 수년간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내가 홍천으로 이사간다고 했을 때 그 ‘오지’에 가서 우울증에 걸리지나 않을 지,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018’년에 이사를 왔는데도, “홍천에 ‘카페’는 있니?”, “편의점’은 있니?” 하고 물어볼 정도였으니 경기 수도권에만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곧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나도 그랬으니까 )   

홍천에 온 지 얼마 안돼서 인구 7만 선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7만이라는 숫자는 한 도시가 자체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숫자였나 보다. 가만히 있어도 지역민들의 위기감과 불안감이 나에게까지 밀려왔다. 인구소멸지역 1순위, 2순위.. 이런 통계가 발표 될수록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감은 요동친다. 한창 대학원에서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 등을 공부할 때라 홍천을 놓고 이런저런 도시 혁신 모델을 상상하곤 했다.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늘 홍천 발전 방안을 토론하곤 한다. 대학을 유치하자, 산업단지를 유치하자, 철도를 놓자, 거대한 규모의 랜드마크를 만들자. 청년, 젊은 부부들을 이사오게 할 방법,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 등등. 다른 지역, 나라의 사례까지 더해져 늘 흥미진진한 토론이다. 

홍천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홍천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상징성 있는 커다란 나무도 없고, 역사 유적도 그닥 유명하지 않고 볼 것이라곤 산과 강밖에 없다나. 체념과 자조의 이야기 속에서 나도 이제 홍천사람이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함께 고민하며 희망을 만들어 가고 싶다. 

박지선 예비사회적기업 ‘상상너머’ 대표 /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홍천상생네트워크 회장, 성남여성회지부장, 성남태평동작은도서관 실장 역임 / 저서 ‘홍천엄마의 그림일기 나에게 로컬을 선물했다’/공저 ‘포틀랜드 로컬과 혁신이 만나는 도시’, ‘빌바로 몬드라곤 바르셀로나 도시,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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