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81]

많은 사람들이 헤어지기 아쉬워하면서 썼던 용어가 별리다. 평안도사로 부임해 간 친지가 보고 싶었음을 서찰과 함께 보냈던 시 한 수는 별난 느낌을 주고 있어 시의 실체에 대한 시인의 시상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한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창힐이 이별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진시황이 이별을 불태웠더라면… 넌센스 같은 시상을 보인다. 인간 세상에 머물러 남아서, 양관에서 떠나고 머물 때마다 이별을 본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送平安都事金彦亨(송평안도사김언형) / 봉래 양사언
창힐이 부질없이 이별이란 글자에
진시황 어찌하여 불태우지 않았는지
세상에 머물러 남아 이별을 보는구나.
蒼詰謾爲離別字  秦皇胡乃不焚之
창힐만위이별자   진황호내불분지
至今留滯人間世  長見陽關去住時
지금유체인간세   장견양관거주시

창힐이 부질없이 ‘이별’이란 글자를 만들었구나(送平安都事金彦亨)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창힐이 부질없이 ‘이별’이란 글자를 만들었구나 / 진시황은 어찌하여 이 글자를 불태우지 않았던가 // 인간 세상에 머물러 남아서 / 양관에서 떠나고 머물 때마다 이별을 보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평안도사 김원형에게 보냄]으로 번역된다. 시제에서 보이는 김원형이란 사람은 평안도사를 지냈던 것 외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시인과는 잘 아는 사이인 것으로 생각된다. ‘양관’에 같이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떠나 이별하는 장면이 시적인 배경이다. 남녀 간의 이별이나 친구 간의 이별도 그 아픔은 마찬가지였음엔 분명하다.

시인의 시상은 이별의 쓰라림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시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창힐이 부질없이 ‘이별’이란 글자를 만들었고 진시황은 어찌해 이 글자를 불태우지 않았는가라고 묻는다. 다소 황당한 질문이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문학적인 비유법과 상징법은 가히 달관의 경지였음을 알게 한다.

화자는 여건이 헤어져야 할 숙명적인 명제 앞에 인간 세상에서 이별하게 된다는 후정을 일구었다. 인간 세상에 머물러 남아서 양관에서 떠나고 머물 때 이별을 본다고 했다. 시문의 정을 나누었던 두 사람이 이제 창힐과 진시황을 원망하면서 옮기는 발길은 가볍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창힐이 이별 글자를 진시황 태우지 않아, 인간세상 머물러서 이별이 머물 때마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 서예가이다. 삼등·함흥·평창·강릉·회양·안변·철원 등 8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완상하였으며, 만폭동 바위에 그의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다.

【한자와 어구】
蒼詰: 창힐(처음 한자 지음). 謾: 부질없이 爲: 만들다. 離別字: 이별이란 글자. 秦皇: 진시황. 胡乃: 어찌 이에. 不焚: 불사르지 않다. 之: 그것(여기선 이별의 글자) // 至今: 지금. 留滯: 머물러 남다. 人間世: 인간세상. 長見: 오래 이별을 보다. 陽關: 만리장성 서쪽 관문인 양관. 去住時: 머물렀다 떠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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