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야기 삶이야기[1]

▲선아름
'법률사무소 해원' 대표(서석)
홍천군청 법률상담 위원

대한변호사협회와 법무부는 2013년 6월5일 마을변호사 제도를 도입했다. 근처에 변호사 사무실이 없어 법률 도움을 받기 어려운 무변촌 지역주민들을 돕기 위해서다. 현재는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 마을변호사가 배정되어 있다. 마을변호사는 읍·면 단위 마을과 연계하여 주민들이 법률문제에 관해 ​전화, 팩스, 이메일 등으로 타지역에 거주하는 변호사에게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필자도 홍천군의 몇 개 면에 마을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는데 사실상 법률상담 문의는 거의 없다. 마을 주민들에게 홍보가 잘 되지 않았나 싶어 면사무소 담당 주무관에게 “제가 이곳 마을변호사입니다”라며 전화도 해보았지만 막상 해당 지역에서는 실효성 있게 운영되는 것 같지 않다.

최근 무변촌 관련 뉴스가 보도되었다. 전국 252개 시·군·구 중 64곳이 변호사 없는 ‘무변촌’이라는 내용이었는데 홍천도 무변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이 보도는 2016년 자료에 기반했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해 홍천군 서석면에 ‘법률사무소 해원’을 개업했기 때문에 홍천은 더 이상 무변촌이 아니다. 서석면에 변호사사무실을 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은 ‘홍천에 개업할 거면 읍내에 하지 왜 면에 사무실을 냈느냐’는 질문이다. ‘도시와 농촌 간의 지역편차 해결’과 같은 거창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면 단위에 사무실을 냈다기 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 변호사사무실을 냈다. 

필자는 서울에서만 줄곧 살아오다가 지난해 가족과 함께 서석면으로 이사를 왔다. 30대에 도시를 떠나온 까닭은 흙과 조금 더 가까운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먼 거리를 출퇴근하며 길바닥에서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홍천읍내에도 변호사사무실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읍은 춘천과 30분 남짓 거리이기 때문에 읍 주민들은 춘천에 있는 변호사사무실에 쉽게 갈 수 있다. 반면 서석면을 비롯해 홍천 서쪽에 위치한 면 주민들은 변호사를 만나려면 춘천이나 원주로 멀리 나가야 한다. 따라서 사무실이 서석면에 있으면 서석면은 물론 화촌면, 내촌면, 내면 주민들은 차로 30분 이내에 변호사를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이 밭일을 하다 신발에 흙을 묻힌 채로도 부담 없이 변호사를 만나러 오시면 좋겠다. 실제로 서석면에 개업을 하니 면에 계신 분들은 ‘제집 드나들듯이’ 이곳에 오신다. 장 보러 나왔다가, 면사무소 가는 길에 언제든 들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변호사가 있다. 법률사무소 해원은 필자의 집에서도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으니 필자에게도 주민들에게도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가 배출된 지 10년이 되었다. 매년 변호사가 넘쳐나 도시에는 이미 변호사 포화상태가 되었지만 변호사들은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개업 변호사 중 80%가 서울에 있고, 그 중 절반은 강남과 서초동에 있다. 지방에 있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지방법원 및 검찰청 근처에 사무실을 둔다. 일의 편의상 법정 근처로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이 변호사를 편안하고 신속하게 만나려면 변호사가 법원 근처에 몰려 있을 것이 아니라 주민들 집 근처로 흩어져 있어야 한다. 아마도 법률사무소 해원이 면 단위에 있는 변호사사무실의 첫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식이 어떤 이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각 마을마다 이런 진정한 의미의 ‘마을변호사’가 있다면 지역에 제공되는 법률 서비스 수준도 향상되지 않을까?

변호사가 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경청과 공감에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의 긴 인생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의뢰인들은 오랜 고민 끝에 변호사사무실 문을 두드리기에 가슴앓이가 클 수밖에 없다. 지인들 혹은 인터넷을 동원해 변호사를 어렵게 찾고 먼 거리를 이동해 만난 낯선 변호사에게 그 가슴앓이를 꺼내 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웃에 친근한 변호사가 한 명쯤 있다면 마음에 가득한 한을 꺼내놓기가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도시로 몰리는 이때 시골 끝자락에 자리 잡은 <법률사무소 해원解冤>의 소식이 홍천에서 묵묵히 일상을 지어가는 분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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