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1950년 한민족의 최대 비극인 한국전쟁이 나고 53년 7월27일 휴전이 됐다. 한국전쟁은 북침에 의해 6월 25일 새벽 시작됐고 대구 근방까지 밀리다가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낙동강전투가 승리로 끝나면서 북진이 시작됐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38선이 무너진 후 그대로 진격해 압록강과 두만강 혜산진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여로 1951년 초 국군과 유엔군의 후퇴가 시작됐다. 6.25의 시작이 여름전쟁이었다면 후퇴는 동란(겨울)이었다. 이때 그 유명한 흥남철수작전이 있었다. 

한국전쟁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3여 년 간 치러지다가 휴전으로 정전이 됐다. 그 당시 먹고살기 힘들 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 빈국이었다. 국민총소득인 GNP가 국민 1인당 60여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직업이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구두닦이가 있었다. 대도시는 물론 군소도시까지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구두닦이 통(나무상자로 만든 통)을 어깨에 메고 “구두닦 구두닦”하며 구두를 닦을 것을 권했다. 손님은 주로 군인장교나 군과 관계가 있는 사업자들이었다. 

그 다음 여름 한철 직업으로 아이스께끼(지금의 아이스콘이나 크림)라고 해서 얼음물에 설탕을 넣고 주스가루 등을 넣어 냉동시킨 일종의 얼음덩이다. 지금 가격으로 치면 하나에 몇 백 원 정도다. 홍천에는 세 군데가 있어서 제법 성업을 이뤘다. 청소년들이 아이스께끼 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하며 외치고 다니면 많은 사람들이 사먹었다. 무더운 한여름 별미의 하나였다. 그 후 대기업 등에서 본격적인 아이스크림이 대중화되면서 차츰 소비가 줄어들더니 어느 날 그 자취를 감췄다.

여름에 아이스께끼가 있었다면 겨울에는 주로 밤에 찹쌀떡 장사가 있었다. 긴긴 겨울밤 창문 밖에서 들리는 “찹쌀떡 사려 찹쌀떡” 외치는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군것질로 찹쌀떡을 사먹었다. 이것 역시 세월이 바뀌면서 사라졌다. 또한 새벽잠을 깨우는 두부장사도 있었다. 요령을 흔들면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역시 “두부 사려 두부 사려” 하면 아침반찬을 만들기 위해 주부들이 쪽박을 들고 나와 따끈따끈한 두부를 사가지고 가는 모습이 서민들을 대표하는 정겨운 모습의 한 장면이었다.  

5~60년대 주거환경은 단독주택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전국단위로 볼 때 아파트가 70%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아파트는 없었다. 따라서 연탄이나 나무를 때서 난방과 밥을 해먹었다. 집집마다 굴뚝이 있었는데 가끔씩 굴뚝을 청소해줘야 연기가 제대로 나간다. 굴뚝청소는 아무나 못하고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직업으로 굴뚝청소 전담자들이 있었다. 대나무 끝에 솔을 붙여서 어깨에 메고 “굴뚝 닦으셔 굴뚝 닦으셔” 하며 마을을 돌면서 일을 했다. 지금은 나무를 때는 집이 없어서 이도 사라졌다.

홍천에 있었던 사업체로서 연필공장이 있었다. 60년대에 지금 홍천읍 종로약국 터와 그 뒤편 공영주차장 예정지에 연필 반제품(연필심과 나무만 싸고 마무리는 다른 곳에서 함) 공장이 있었다. 50년대 말에는 신장대리 지금 동일체육사 인근에 재봉틀 바늘을 전문으로 만드는 가내수공업이 있었고 50년대 초에는 진리 세방볼링장 건너편에 유기점(놋그릇 만드는 곳) 공장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제법 컸다. 

전통시장 안 중심부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미전거리라고 해서 5일장에 홍천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식(쌀 잡곡 등)이 한자리에서 판매되고 곡식의 가격이 대부분 이곳에서 형성됐다. 이외에도 제사공장이 2개(한일과 동방) 제재소가 읍내에만 6개가 있었다. 거리에 나가면 리어카(손수레)에 강정과 여러 가지 엿을 싣고 가위를 치면서 고물과 맞바꿔 주는 엿장수도 이제는 없어졌다. 공병이나 쇠붙이를 주면 그 대가로 엿이나 강정을 듬뿍 줬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직업은 있을 것이고 또한 시대의 흐름과 문화와 문명의 발달로 직업도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는 것이 필연적인 것 같다. 우리지역의 몇 십 년 후에 또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생겨날지는 오직 후대 사람들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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