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올해는 태풍이 연속으로 세 번이나 있었다. 동해안을 위시해 남해안과 섬진강 부근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농산물과 그 시설의 피해가 컸다. 농산물은 그 특성상 임의로 만들어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계절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수산물은 대풍이 들면 가격이 폭락되고 흉년(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이 들면 그 값이 크게 오른다. 결과적으로 생산농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소득은 비슷하다는 결론이다. 

풍년이면 수량은 많으나 값이 싸고 흉년이면 물량은 적으나 그 대신 값이 비싸다. 역설적으로 보면 결국 풍년이든 흉년이든 농가의 소득은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해서 정부정책으로 풍년이면 정부에서 매수를 했다가 흉년이 들면 그 매수물을 방출하는데 그 적정가가 얼마가 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국내 물건이 없으면 수입도 한다. 수입에는 관세라는 묘한 제도가 있어 수급조절의 큰 역할을 해준다. 

보통 미국에서 수입하는 농산물 중 밀가루와 콩 옥수수는 국내생산 가격보다 훨씬 싸다. 콩의 경우는 반의 반값이다. 그러니 국내생산이 안될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 경쟁 하에서 싼 곳에서 비싼 곳으로 올 수밖에 없고 그 사이에 관세라는 조세제도가 있어 수급과 소비의 가격조절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고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 

우선 생산자(농민) 입장에서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산한 물건의 값을 많이 받으면 좋은데 왜 수입을 해서 국내생산을 가로막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그 반대로 수요자 측에서 보면 수입하면 훨씬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데 왜 국내산만 고집하느냐 하는 이론도 성립한다. 값비싼 국산만 찾으면 안 된다는 부정적인 의견이다. 해서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상충할 수 있다고 보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그렇다. 내가 내 스스로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다. 예컨대 나이가 들었으니 점잖아야 하고 자녀들이 다 성장했으니 어른스러워야 하고 동네나 이웃에서 나이가 많으니 자제해야 하고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자격지심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 반대로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게 위에 엮은 얘기가 사실 맞긴 하지만 꼭 그렇게만 해야 하는 것이 부정적인 견해일 게다. 

나이가 들었으니 보다 젊은이들 하고 어울려야 몸과 마음이 젊어지고 자녀들이 다 커서 분가들을 했으니 자유스러워야 하고 동네에서 나이가 많으니 솔선수범해서 모든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보면 긍정과 부정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그의 저서에서 성공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나는 성공할 수 있다”고 열 번씩 말하고 출근한 자는 먼 훗날 반드시 성공을 했다고 한다. 그 반대로 “나는 안 돼. 나는 안 돼” 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한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가져오는 게 세상사 이치인가 보다.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 동·서양이 그렇고 민족성이 그렇다. 자연환경이 다르고 생활방식 또한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먹어야 산다는 것과 잠을 자고 일을 한다는 것은 세계의 공통사항이다. 다만 그 방법이 약간씩 다를 뿐이다. 긍정적인 삶을 누리면 그만큼 여유로울 것이고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살기가 어렵게만 느껴질 게다. 

우리의 많은 세상은 보기에 따라 긍정과 부정을 둘 다 갖고 있다. 부정의 문을 닫고 긍정의 문을 활짝 열어서 세상을 밝게 바라보고 살았으면 한다. 내가 속상하다고 누가 달래줄 사람 있겠는가? 운명은 바꿀 수 있다지만 숙명은 못 바꾸는 것이 인간사 아닌가. 살기가 힘들고 세상이 어수선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올겨울을 건강하게 보내고 나면 또 새로운 봄이 우리들 앞에 우뚝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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