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났다고 말한다. 차가운 북풍이 몰아친 한 겨울이 지나고 나면, 훈풍이 불면서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은 따스한 공기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도 와 있다. 속설에 두툼한 겨울옷을 벗고 봄옷으로 갈아입은 이웃집 아가씨를 곁눈질해 보았던 노총각은 영문도 모르면서 ‘봄바람 났다’고 말했었다. 아주머니들도 그렇게 수군댔다. 수양버들 곱게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니, 임 없는 작은 뜰엔 푸른 이끼만 자란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春風(춘풍) / 운초 김부용
수양버들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니
임 없는 작은 뜰엔 푸른 이끼 자라고
주렴 밖 봄바람 일면 님 오시나 기다려.
垂楊深處依開窓  小院無人長綠苔
수양심처의개창  소원무인장록태
簾外時聞風自起  機回錯認故人來
렴외시문풍자기  기회착인고인래

행여나 임이 오시지 않나 속은 것이 몇 번인고(春風)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 ? ~ ?)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수양버들 곱게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니 / 임 없는 작은 뜰엔 푸른 이끼만 자라고 있네 // 주렴 밖에 가끔씩 봄바람이 저절로 일면 / 행여나 임이 오시지 않나 속은 것이 몇 번인고]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봄바람에 취하면서]로 번역된다. 봄처녀, 봄바람, 봄의 속삭임, 강남 갔던 제비의 재회 등은 희망을 약속해 주었다. 움츠렸던 겨울은 답답하고, 찌는 듯한 여름은 땀 때문에 싫고, 가을은 소소하여 봄만 같지는 못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사계절 중에서 시상을 일으키기에 이만큼 좋았던 계절은 없다.

시인은 수양버들과 푸른 이끼라는 봄소식 끌어안고 가만히 창을 열고 보니, 뜰에는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다는 작은 시심 속에 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는 시상이다. 수양버들 늘어진 창문을 열고 가만히 기대어 서보니, 임 없는 작은 뜰에는 푸른 이끼만 자라고 있다고 했다. 이따금 임과 함께 뜰을 거닐었던 추억 한 아름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화자는 봄바람이 먼저 임의 뺨에 앉았다가 온 것으로 간주하면서 우리임이 오시는 것은 아닌지 속았던 후정後情의 시상을 일으켰다. 그래서 화자는 주렴 밖에는 가끔 봄바람 절로 일면 행여나 우리임이 오시는지 속았던 것이 몇 번인가라고 자답을 유도해 본다.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한 화자는 임을 원망했을까? 봄바람을 원망했을까? 해답을 찾지 못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창을 열고 기대서니 작은 뜰엔 푸른 이끼 주렴 밖에는 봄바람이 임 아니나 속았거늘’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 ? ~ ?)으로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이다. 삼호정시단의 동인으로서 같은 동인인 경산과 많은 시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학적인 자부심이 대단하여 자신은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말할 정도였다 한다. 시상이 발랄하고 다채로운 작품이 많다.

【한자와 어구】
垂楊: 수양버들 늘어지다. 深處: 깊은 곳. 依開窓: 창을 열고 의지하다. 小院: 작은 뜰. 無人: 임이 없다. 長綠苔: 푸른 이끼 자란다. // 簾外: 주렴 밖. 時聞: 때때로 들린다. 風自起: 바람이 스스로 일다. 機回: 몇 번인가. 錯認: 속은 일. 故人來: 임이 오시지 않나.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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