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48]

다향茶香이라고 했다. 차를 마신다기 보다는 신선의 도를 마신다고 하는 편이 더욱 낫겠다. 차를 마신다기 보다는 향을 마신다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고, 정결한 정신적인 수양을 위해 마신다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병중에 있으면서 차를 마시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차 달이는 그 정성도 같은 맥락이리라. 맑은 새벽에 찬 샘물을 길어 와서는 돌솥에다 불을 지펴 한가롭게 노아차露芽茶를 달인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中煎茶(병중전다) / 사가정 서거정
금년 들어 쇠한 병에 갈증이 심하니 
이따금 즐겁기는 차 마실 때 뿐인데 
새벽에 샘물을 길어 노아차를 달인다.
衰病年來渴轉多 有時快意不如茶
쇠병년래갈전다   유시쾌의부여차
淸晨爲汲寒泉水 石鼎閑烹金露芽
청신위급한천수   석정한팽김로아

금년 들어 쇠한 병에 갈증만이 부쩍 심해지니(病中煎茶)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금년 들어 쇠한 병에 갈증만이 부쩍 심해지니 / 이따금 즐겁기는 차 마실 때뿐이로구나 // 맑은 새벽에 찬 샘물을 길러 와서는 / 돌솥에다 불을 지펴 한가롭게 노아차露芽茶를 달이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병중에 차를 달이다]로 번역된다. 이색의 시구에 보면 노아차露芽茶란 명칭이 등장한다. 새벽이슬 머금을 때 따는 ‘찻싹’이란 뜻을 담는 것 같다. 도톰한 모습이 사랑스럽고 신선하기가 그지없었을 것이다. 대시인도 병중에 차를 달이며 도인의 경지에 드는 기원을 했을지도 모른다. 노아차 마시니 좋은 시심 길러달라는 그런 염원 한 마디쯤은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니.

시인은 병이 깊어 이따금 차 한 잔으로 마음을 다스렸다는 선경의 그림을 곱게 그려냈다. 금년 들어 쇠한 병에 갈증까지 부쩍 심해졌는데, 이따금 차 마실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했다. 쇠한 병에 차 한 잔이 좋은 줄은 알 수 없지만, 흔히 마음의 병이 더 중하다고 했다면 이것도 병을 다스리는 열쇠가 되지는 않을까 본다.

그럼에 따라서 화자는 맑은 새벽에 샘물을 길러 와서 노아차를 달인다는 시상 한 줌을 쏟아내고 만다. 맑은 새벽에 맑고 찬 샘물을 길어 와서는 돌솥에다 한가롭게 노아차露芽茶를 달인다고 했다. [차선茶禪의 경지]에 든 신선의 모습이 상상된다. 차는 이렇게 끓여야 된다는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을 만나는 듯하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쇠한 병에 갈증 부쩍 즐겁기는 차 마실 때, 맑은 새벽 찬 물 길러 불을 지펴 노아차를’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453년 수양대군을 따라 명에 종사관으로 다녀왔다. 1455년(세조 1) 세자우필선이 되었고 1456년 집현전이 혁파되자 성균사예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1457년에는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衰病: 쇠한 병. 年來: 금년. 해가 오다. 渴轉多: 갈증이 심하다. 有時: ~할 때가 있다. 快意: 상쾌하다. 不如茶: 차와 같지 않다. 곧 차를 좋아하다. // 淸晨: 맑은 새벽. 爲汲: 물을 긷다. 寒泉水: 차가운 물. 石鼎: 돌 솥. 閑烹: 한가롭게 달이다. 金露芽: 노아차 (달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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