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47]

겨울철 보름달을 흰 달이라 표현한다. 시인 자신의 절개와 눈을 딛고 서서 핀 매화와 그 창의 꼿꼿함의 상징으로 보인다. 절개 곧은 매화와 흰 달 그리고 사육신으로 그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시인 자신이란 삼위일체는 꼭 들어맞는 유사성을 나타내 보인다. ‘우리는 불사이군 不事二君하겠다는 뜻을 같이 한 동지인 걸’이라 했겠다. 온화한 사람의 마음은 마치 옥과도 같고, 몽실몽실 피어나는 꽃은 마치 눈과 같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梅窓素月(매창소월) / 매죽헌 성삼문
온화한 마음만은 옥과도 같은 사람
몽실몽실 피는 꽃 하얀 눈은 같은데
달빛에 마주 볼 적에 고요하게 비추네.
溫溫人似玉    靄靄花如雪
온온인사옥    애애화여설
相看兩不言    照似靑天月
상간양부언    조사청천월

푸른 하늘에 달빛만이 고요하게 비추고 있구나(梅窓素月)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온화한 사람의 마음은 마치 옥과도 같고 / 몽실몽실 피어나는 꽃은 마치 눈(雪)과도 같구나 // 서로 마주보면서 말은 없었을지라도 / 푸른 하늘에 달빛만이 고요하게 비추고 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매창엔 겨울철 달이 비추고]로 번역된다. ‘아니 이 사람 취금헌 자네도 시적인 감흥이 일어났단 말인가. 별일이군! 새벽달 그림에 색칠을 했다지. 나도 말이지, 가만히 겨울철 달을 보니 금방 시상이 떠올라 더는 못 참았다네. 차가운 달을 보고 시상을 떠올린 자네와 나는 사육신이란 천생연분 아니겠는가. 누가 흔들어 깨우던 말든 우리 상군(단종)이나 잘 모시도록 하세’라는 선문답先問答을 제시해 본다. 성삼문이 박팽년에게 한 말이다.

시인이 겨울철 찬 달을 보고 옥과 같고 꽃과 같다는 시상 주머니는 사육신답지 않게 넉넉한 시상 주머니를 매만지는 것 같다. 온화한 사람 마음은 마치 옥과 같고, 몽실몽실 피어나는 꽃은 눈과 같다는 시상이다. 시상의 흐름으로 보아 차분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 급진성향보다는 온순한 시상의 내음을 맡을 수 있어 보인다. 화자는 달과 대화하지는 않았지만 푸른 하늘의 고요함은 변함없다는 후정의 다소곳한 그림 한 폭을 그려내고 만다. 서로 마주보며 말은 없을지라도, 푸른 하늘에 달빛만은 고요히 비춘다는 서정성을 보자기로 잘 덮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온화한 마음 옥과 같고 꽃은 마치 눈과 같네. 마주 보며 말없어도 달빛만이 비추면서’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 이개 등과 함께 명나라에 건너가 음운 연구를 겸하여 교장의 제도를 연구하여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한자와 어구】
梅窓: 매화꽃이 피는 모습이 보인 창. 素月: 흰 달. 곧 차가운 밤의 겨울철 달, 溫溫: 온화하다. 人似玉: 사람이 옥과 같다. 靄靄: 몽실몽실하다. 花如雪: 꽃은 눈과 같다. // 相看: 서로가 보다. 兩不言: 둘은 말은 없었다. 照: 비추다. 似靑天: 푸른 하늘과 같다. 月: 달빛. 여기선 비춘 달빛을 뜻함.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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