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43]

서예작품이나 사군자를 비롯해서 그림 한 폭을 요구하면 선뜻 그려서 마음을 공유했다. 화가의 입장에선 본인의 그림 실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흐뭇했겠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당대의 모모한 화가의 작품이라고 아끼면서 감상했으리라. 그림뿐만이 아니라 한 편의 시나 음악 등 예술작품은 상호 공유의 의미를 깊이 담고 있으리니. 강 위에는 높고 낮은 봉우리 어우러지고, 강변에는 나무들도 늘어서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蔡子休求書作山水(채자휴구서작산수) / 인재 강희안
강위에 봉우리 높고 낮게 어울리고
강변에 나무들 흰 구름은 오락가락
어디가 신선 사는지 알 수가 없구나.
江上峰巒合    江邊樹木平
강상봉만합    강변수목평
白雲迷遠近    何處得蓬瀛
백운미원근    하처득봉영

어디가 신선이 사는 곳인지 알 수 없구나(蔡子休求書作山水)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1417~1464)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강위에는 높고 낮은 봉우리 어우러지고 / 강변에는 나무들도 늘어서 있네 // 흰 구름 멀어 졌다 가까워 졌다 오락가락하니 / 어디가 신선이 사는 곳인지 알 수 없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채자휴가 그림을 그려 달래서 산수화 한 폭을 그리고 짓다]로 번역된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자휴子休란 사람이 그림 한 점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했겠다. 이름 없는 화가라고 함부로 작품을 주어 낭비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관계가 돈독한 사람이나 작품성을 떠나서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시인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시인은 높고 낮은 봉우리 어울리고, 강변과 나무도 어울리는 관계가 있음을 시통주머니에서 만지작거렸음을 본다. 강 위에는 높고 낮은 봉우리 어우러지고, 강변에는 나무들도 늘어서 있다고 했다. 첫 구부터 한시의 생명과도 같은 대구적인 시상이 범상해 보이지 않는다. [江上 江邊 峰巒 樹木] 등의 관계들이 그렇다.

화자는 선경에서 고운 그림을 그러놓더니만 흰 구름 멀고 가까우니 어디가 신선 사는 곳인지 알 수 없다는 후정을 담아냈다. 흰 구름 멀어 졌다 가까워 졌다 오락가락하니, 어디가 신선이 사는 곳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도 가깝고 멀다는 [원근遠近]과 봉래산과 영주산인 [봉영蓬瀛]이 참으로 신선 사는 곳인 바 대칭법의 모범을 보인 작품이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어울린 높고 낮은 봉 강변 나무 늘어지고, 백운 원근 오락가락 신선 거처 알 수 없네’ 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1417~1464)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시(蓍)의 증손으로 조부는 강회백, 아버지는 강석덕, 어머니는 심온의 딸로 알려진다. 동생은 강희맹이며, 바로 이모부가 세종이다.  시詩, 서書, 화畵의 삼절로 이름이 높았으며, 북송의 화풍을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자와 어구】
江上: 강 위. 峰巒: 높고 낮음(峰: 높은 봉우리, 巒: 낮은 봉우리) 合: 합하다. 江邊: 경변. 강가. 樹木平: 나무가 늘어서 있다. // 白雲: 흰 구름. 迷遠近: 멀고 가까움이 희미하다. 何處: 어느 곳. 得: 알다. 이해하다는 뜻. 蓬瀛: ‘蓬: 봉래산, 瀛: 영주산’으로 신선이 사는 곳.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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