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41]

한식은 설·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여기면서 모든 백성들이 즐겼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에 드는 날로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날’이다. 진나라 문공과 면산에서 불타 죽은 개자추전설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중국의 전설일 뿐 한식날부터 농가에선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들어 새로움을 더한다. 배에 가득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데 버들 꽃 필 무렵 따스한 고향의 정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西江寒食(서강한식) / 추강 남효온
어두운 날 울타리에 찬 기운 이는데
한식날에 동풍 불어 맑은 물 흐르고
고향에 버들 꽃 피어 이야기는 끝없네.
天陰籬外夕寒生    寒食東風野水明
천음이외석한생    한식동풍야수명
無限滿船商客語    柳花時節故鄕情
무한만선상객어    유화시절고향정

한식날에 동녘 바람이 들로 흐르는 물이 밝구나(西江寒食)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15~14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늘은 어둑하고 울타리 밖에는 저녁의 찬 기운인데 / 한식날에 동녘 바람이 들로 흐르는 물이 밝구나 // 배에 가득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네 / 버들 꽃 필 무렵의 고향의 따스한 정]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서강의 한식날에]로 번역된다. 서강은 오대산 남쪽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주천강이 서면에서 합류해 영월읍 동강과 만나는 지점까지 흐르는 하천이다. 청명 한식이라 했다. 한식은 청명 다음날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음력으로는 대개 2월이 되고, 양력으로는 4월 5~6일경에 한식이 든다. 예로부터 한식은 설·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일컬었다. 시인은 서강에서 한식을 보냈던 모양이다.

시인은 한식임에도 찬 기운이 감돌고 동녘 바람을 타고 들판을 흐른다는 선경의 시상을 꼬기작거린다. 하늘은 어둑하고 울타리 밖에는 저녁때의 찬 기운이 이는데, 한식날 동녘 바람에 들을 흐르는 물이 밝다고 했다. 청명 날 해질 무렵이 차갑지만 맑은 경치에 도취되었던 소회의 한 마디가 강물을 적셔 은은하게 울리는 듯하다.

 화자는 배에 탄 장사꾼의 떠들썩한 이야기에 뿌듯한 고향의 정을 느껴 담아보려고 했다. 배에 가득한 수선스런 장사꾼들의 이야기가 끝없는데 만사 버들 꽃 필 무렵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고향의 정이라고 했다. 물씬 풍기는 고향의 정을 한 짐 짊어진 화자의 들뜬 분위기를 읽는 것 같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울타리 밖 저녁 기온 동녘 바람 물도 맑고, 배에 가득 얘기꽃 잇는 고향의 따스한 정’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78년 성종이 우토의 재난으로 군신들의 직언을 구하자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그 중 소릉 복위는 세조 즉위 사실과 그로 인하여 배출된 공신의 명분을 부정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西江: 평창강에 흐르는 강. 天陰: 하늘. 籬外: 울타리 밖. 夕寒生: 저녁의 찬 기운이 생기다. 寒食: 한식. 東風: 동풍이 불다. 野水明: 들로 흐르는 물이 밝다. // 無限: 한이 없다. 滿船: 가득 싣다. 商客語: 상객들의 말.  柳花: 버들 꽃 또는 버들개지. 時節: 시절. 故鄕情: 고향의 따스한 정.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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