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엄마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7시간 갇혔다 죽은 아홉 살 남자 어린이 사망 사건에 이어 지난주 경남 창녕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가 부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계부와 친모가 목에 쇠사슬로 묶어 가둬 놓은 집 베란다에서 피멍투성이 상태의 맨발로 목숨을 건 탈출로 아동 학대에 대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는 꽃으로라도 때려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다.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말이다. 어린아이는 가치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해 행동하는 것이 아닌 본능에 의해 행동한다. 특히 어렸을 때 당한 폭력의 상처는 평생 안고 살아가게 된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바른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체벌을 가하는 것을 ‘사랑의 매’라고 미화시키기도 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회초리를 사용하는 것을 사랑의 매로 ‘교편을 잡는다’라고도 했다.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말보다 체벌이 빠르다.

최근 부부의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자식이 부부 관계를 지속시키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했으나 요즘 자식 때문에 부부의 갈등을 참고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다 보니 한부모가정 자녀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사는 조손가정의 자녀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혼율이 증가하는 만큼 재혼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풍속도가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재혼에도 하객을 초청해 거창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재혼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풍토다. 문제는 여기서 의붓아버지나 의붓어머니의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친부모가 아니라고 해서 자녀들을 무조건 미워하거나 학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혈연관계가 전혀 아닌 입양한 자녀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는 부모들도 많이 있다. 자녀를 자신에게 종속된 아이라는 잘못된 생각과 양육과정에서 부모는 자녀를 때려도 된다는 생각이 문제다. 자녀도 소중한 인격체다. 

계모의 자녀 학대는 동서고금을 통해 같다. 우리나라에는 ‘콩쥐와 팥쥐’라는 고전에 잘 나타나 있고 서양에서도 ‘신데렐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소설이다 보니 주인공이 계모의 학대를 이겨내고 마침내 행복한 삶을 얻는 ‘해피엔딩’이지만 학대를 받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친모와 계모의 차별성이 확인된다. 

어린이의 부모 학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자녀 양육과정에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체벌이 심화되면 학대가 될 수 있으나 자녀를 훈육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담긴 체벌과 학대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자녀 양육과정에서 가벼운 체벌로 부모가 벌을 받게 된다면 ‘무자식 상팔자’가 일반화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젊은 부부들은 자녀를 잘 낳으려 하지 않는다. 많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뒷바라지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과 양육의 어려움이 주된 원인이다. 가뜩이나 자녀를 잘 낳으려 하지 않는 풍토 속에서 자칫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큰 염려가 된다. 정부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며 삶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녀 훈육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말이‘ 귀한 자식일수록 엄히 키워야 한다’라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엄히 키워야 한다는 말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진정성 있는 훈육은 칭찬과 벌이 함께 공존하기 마련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줘야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며 올바른 습관을 키워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체벌로 습관을 바로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폭력은 대물림한다. 양육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기다리며 체벌이나 학대가 아닌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야 한다. 

이영욱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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