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39]

시는 비유와 상징이라고 한다. 평범한 시는 비유적인 시어를 끌어들이지 못해 공감이 적다. 이념의 푯대 끝에 자기의 이상을 걸어 놓고 그를 향해 나가는 것처럼 상징인 그 무엇을 정해 놓고 시상을 이끌어 가야만 좋은 시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시제를 설정해 놓고 이녀죽二女竹과 대부송大夫松이란 비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움이 있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端宗(단종) / 저헌 이석형
순임금 시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진나라 시 대부송의 영화로움 있었는데
이들을 어찌 지극정성 환대할 수 있으리. 
虞時二女竹    秦日大夫松
우시이녀죽    진일대부송
縱有哀榮異    寧爲巉熱容
종유애영이    영위참열용

어찌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환대할 수만 있으리(端宗)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1415~1477)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움 있었네 // 이들의 슬픔과 영화로움이 다를 뿐이지만 / (그렇다고 해서) 어찌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환대할 수만 있으리]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어린 단종을 생각하며 / 슬픔과 영화는 다르지만]으로 번역된다. 이 시제는 [이녀죽二女竹과 대부송大夫松]으로 되어있고, 시제 아래 [차익산동헌운(次益山東軒韻)]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시인은 이 시를 사육신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썼으니 마땅히 단종의 죽음과 연관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위의 내용을 알고 보면 죽음을 당하는 사육신을 슬픔의 표현인 [이녀죽二女竹]으로, 죽음을 면하는 시인 자신을 [대부송大夫松]으로 비유하고 있음이 옳겠다.

시인은 순임금 때 아황과 여영이란 두 왕비가 순임금이 죽자 슬프게 울어 소상강의 대나무에 얼룩이 생겼음을 빗대었다.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움이 있었다는 시상이다. 대부송은 진나라 진황제가 소나기를 피하도록 도와서 대부 벼슬을 내렸다는 ‘영화로운 일’을 뜻한다. 화자는 위 두 가지 비유의 상징은 비록 다르지만 ‘열용熱容’으로 한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는다. 이들의 슬픔과 영화로움이 다를 뿐이니 그렇다고 어찌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환대할 수만 있으랴 라는 시상의 가르침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이녀죽의 슬픈 일과 대부송의 영화로움, 슬픔 영화 다를 진데 냉대 지극 구별 하리’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1415~1477)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김반의 문인으로 1441년 좌정언이 되었고, 1442년 사가독서했다. 집현전직제학, 판중추부사 전라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고 1471년 [대학연의집략]을 찬하기도 했다. 저서로 [저헌집]이 있고 시호는 문강文康)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虞時: 우임금 때, 곧 순임금 때를 말함. 二女竹: 우 나라 때 두 여인의 대나무. ‘슬픈 이야기’. 秦日: 진나라 때(日=때). 大夫松: 진(秦) 나라 때 대부 칭호를 받은 소나무. 곧 ‘기쁜 이야기’ // 縱: ~일 뿐이다. 有: 있다. 哀榮異: 슬픔과 영화가 다르다. 寧爲: 어찌 ~리. 巉熱容: 냉대하고 지극정성으로 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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