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50여 년 전 직장에서 현역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할 때였다. 당시에는 전자계산기가 없어 모든 계산을 주판으로 했다. 금융업무란 원래 숫자를 가지고 하루 종일 씨름하는 직업이다. 

며칠 전에는 사회단체 총회 날이었다. 결산서를 살피던 회원이 느닷없이 “전 강회장님한테 배운 복식부기 기초로 동네일은 물론 그 당시 직장에서 수월하게 일을 했어요. 지금도 회장님을 뵈면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한다. 내가 “뭔데요?” 되물으니 “회장님께서 조합직원 교육 때 부기를 쉽게 가르쳐줘서요” 한다. 나는 “아 그랬군요” 답하면서 얼추 옛 기억을 떠올렸다. 

필자는 홍천농고 상과를 나와서 기초적 상업이론으로 부기 등을 배웠다. 직장이 농협중앙회(현 농협은행) 군지부였기 때문에 우리 홍천관내 각종 조합의 임직원에게 회계교육을 많이 시킨바 있다. 회계기초란 게 이해를 하면 아주 쉬운데 그렇지 않으면 알쏭달쏭해서 착각하기 쉬운 점이 있다. 

원래 부기는 단식부기와 복식부기로 크게 나누고 다시 세부적으로 구분되는데 단식부기는 소규모 점포 등에서 쓰는 단순 금전출납부 등이고 복식부기는 주로 기업이나 은행에서 쓰는 차변 대변 손익 총계정(원장) 등을 사용하는 기재방법인데 이해를 하고 나면 쉬우나 이해가 안 되고 단순 암기해 사용하려면 약간 힘든 면이 있다. 아마 그 회원은 그때 필자의 교육을 받고 복식부기의 기초 원리를 터득했던 것 같다.  

또 그 당시 정부에서 농촌의 고리채 탕감 및 결손처리를 정부차원에서 실시한바 있다. 필자가 그 업무를 맡아 성실히 이행했다. 고의성이 있어 보이는 채무자는 보다 엄격히 조사를 했고 정말로 사업실패로 곤란한 채무자의 탕감(면제)은 과감하게 조사 보고를 해서 채무변제를 받게 했다. 지금도 그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자녀들까지도 성공해서 가끔 필자를 보면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나야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했을 뿐인데 대상자였던 그 사람들은 꽤나 고마웠던가 보다.

1970년대 초 전국적으로 화전정리를 했다. 홍천군이 전국에서 화전정리 실적 우수 군으로 타의 모범사례가 됐을 때다. 필자는 당시 은행에서 감정 업무를 담당해 개인과 단체의 의뢰물건을 감정했다. 동면의 화전마을 농가 철거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하는데 군청으로부터 주택 값어치를 감정해달라는 의뢰가 왔다. 

그 당시 감정 규정대로라면 평가액은 고사하고 오히려 철거비용을 부담해야 할 물건들이다.  허나 떠나는 화전민들은 정부차원에서 보상을 하기 위해 그 기준을 정해줘야 하는데 감정서가 필요하다는 거다. 연구 끝에 현재 사람이 살고 있으니 개보수 보정 복성식평가법을 적용해 타당성 있게 감정가를 정해줬다. 

대상자들은 의외로 상당한 보상을 받게 됐고 의뢰처인 행정당국에서는 정당한 시세로 보상하게 돼서 화전정리 사업이 원만히 성공리에 끝났다. 그 후 화전민들은 대부분 외지나 인근으로 이주해 잘 살고 있다. 그 대상자였던 이주 화전민들을 만나면 가치가 별로 없던 농가를 제대로 값을 쳐줘서 고마웠단 얘기를 듣곤 했다.  

어느 날은 시골에서 영농을 하는 한 지인이 찾아오더니 대뜸 “어이 친구 융자 좀 해줄 수 없나?”라고 했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집 앞에 타인의 농지가 천여 평 정도 있는데 이를 판다고 하기에 꼭 사야하겠는데 당장 돈이 없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고 농기업 자금으로 원하는 만큼 대출을 해줬다. 그 지인은 바로 농지를 구입하고 중농으로 성공을 했다. 

요즘은 금리가 많이 낮아졌고 예금도 넘쳐나 금융기관에서 대출이 덜 되고 예금은 많이 늘어 대출 수요처를 찾느라 고심하지만 4~50여 년 전만 해도 은행 대출 받기가 매우 힘들었던 때다. 필자는 대출 쪽 업무를 평직원 때부터 책임자가 될 때까지 많이 본 편이다. 

지금도 당시 고객을 만나면 “그때 강 회장이 융자를 해줘 내가 지금도 그 점포를 잘 운영하고 있네. 참 그때 고마웠지” 한다. 필자야 응당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옛 일을 잊지 않고 긍정적인 말을 해 줄 때는 나 역시 마음이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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