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27]

우리가 외국과 충돌하여 승리했던 일은 흔치 않았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고 해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외국이 침입하여 방어하는데 대승을 거두거나 기세가 억눌렀던 경우는 상당수 있었지만… 암만해도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승리는 신묘함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게 하면서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던 사건이었다. 살수는 거침없이 물결 푸른 하늘 맞대어 흐르고, 수나라 백만 군사는 물고기로 변했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安州懷古(안주회고) / 우재 조준
살수는 푸른 하늘과 맞대어 흐르고
수나라 백만 군사는 물고기로 변했는데
여기에 사람들 말에 한 웃음 차지 않네.
薩水湯湯漾碧虛    隋兵百萬化爲魚
살수탕탕양벽허    수병백만화위어
至今留得漁樵話    不滿征夫一笑餘
지금류득어초화    불만정부일소여

나그네의 한 웃음 남짓함에도 흡족하지 않는 듯이(安州懷古)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우재(旴齋) 조준(趙浚:1346~1405)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살수는 거침없이 물결 푸른 하늘 맞대어 흐르고 / 수나라 백만 군사 물고기로 변했네 // 이제 여기 머물러 어부들과 나무꾼과 이야기하면 / 나그네 한 웃음 남짓함에도 흡족하지 않는 듯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안주에서 옛일을 생각함 / 안주(薩水)에서]로 번역된다. 안주는 살수薩水(청천강) 근처에 있던 고을이다. 시인은 안주 지방에서 있었던 살수대첩을 회고한다. 이 대첩은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우중문을 크게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던 일이다. 을지문덕이 수우중문隋于仲文에게 보낸 편지 마지막에 썼던 시를 기억한다면 간담이 서늘하다.

시인은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 군사를 고구려 깊숙이 유인한 후 반격을 개시했음도 기억한다. 살수는 거침없이 물결치며 푸른 하늘과 맞대어 흐르는데, 수나라 백만 군사가 물고기로 변했다고 했다. 을지문덕 장군은 우중문에게 거짓항복을 청해 퇴각구실을 만들어주는 척하면서 일대추격전을 전개하는 전술을 폈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는 시적인 딴전을 부리면서 시상의 완성미를 보여준다. 이제 여기 머물러 고기 잡는 사람과 나무하는 사람들에게 그 때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그네(시인 자신)의 한 웃음 남짓함에는 차지 않는다고 했다. 승리했던 이야기는 들어도 또 듣고 싶어한다. 화자도 어부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물었지만 기대만큼 양이 차지 않았음이 묻어나온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살수물결 푸른 하늘 수병군사 물고기로, 머물러서 이야기하면 나그네 웃음 홉족 않듯’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우재(旴齋) 조준(趙浚:1346~1405)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송당(松堂)으로 썼다. 1371년(공민왕 20) 책을 끼고 수덕궁 앞을 지나가다 공민왕의 눈에 들어 마배행수에 임명되었다 한다. 1374년(우왕 즉위년) 급제한 뒤에 1376년 좌우위호군 겸 통례문부사가 되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安州: 살수 근처에 있는 고을. 薩水: 청천강. 湯湯: 거침없이. 漾: 흐르다. 碧虛: 하늘과 맞닿아 흐르다.  隋兵: 수나라 병사. 百萬: 백만 명. 化爲魚: 물고기 밥이 되었다. // 至今: 지금. 留得: 머물러 ~을 얻다. 漁樵話: 어부들과 나무꾼과 대화하다. 不滿: 만족하지 않다. 征夫: 나그네. 一笑餘: 한 웃음 남짓.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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