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26]

고을 원님으로 부임하는 자제나 친지에게 많은 부탁을 한다. 고을을 다스리는데 공정하고 바르게 해라. 원망이 없도록 해라. 약자의 편에서 원망과 원한을 더 깊지 않게 하라. 고을을 순회하며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라는 등등이리라. 시인도 친지가 처음 고을의 수장이 되어 가는데 봄 농사를 잘 살피도록 부탁을 했던 시상이다. 삼월 달 팽성에 뻐꾸기가 울면, 많은 이랑의 보리 물결이 구름과 더불어 한가지로 하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贈彭城監務李君(증팽성감무이군) / 쌍매당 이첨
삼월 달 팽성에는 뻐꾸기 울어대고
이랑에 물결 일고 구름과 같을진데
자네는 농사 점검에 동서로 다니게나.
三月彭城布穀啼    千畦麥浪與雲齊
삼월팽성포곡제    천휴맥랑여운제
使君日用非他事    點檢春耕東復西
사군일용비타사    점검춘경동부서

봄 농사를 점검하면서 동서로 돌아다니시게(贈彭城監務李君)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1345~1405)으로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삼월 달 팽성에 뻐꾸기 울면 / 많은 이랑의 보리 물결이 구름과 더불어 한가지겠다 // 자네는 하루를 다른 일에 쓰지 말고 / 봄 농사를 점검하면서 동서로 돌아다니게]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팽성 감무 이군에서 보냄 / 원님이 해야 할 일]로 번역된다. 작은 고을인 팽성에 한 후배가 감무(원님)가 되어 부임해 갔다. 어느덧 뻐꾸기 우는 봄이 돌아왔다. 넓은 들 보리밭에 이랑마다 푸른 보리가 구름같이 일렁인다. 시인은 후배에게 시 한 수를 써서 보내는데 딴 짓 말고 농부들 봄 농사를 도우라는 뜻을 담았겠다.

시인의 시상은 여느 시와 같이 선경先景의 시상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서 시상을 내밀었을 것으로 보인다. 꽃피는 삼월 달에 팽성彭城에 뻐꾸기 울게 되면 많은 이랑의 보리 물결이 구름과 더불어 한가지겠다는 풍성을 약속하는 시상이다. 이 시를 읽게 되면 전구와 후구의 연결성이 극히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고 봄의 그림 한 폭을 포근하게 느낀다.

화자가 시적 상관자에게 보내는 한 가지 소망을 봄 농사를 격려하고 권한다. 그대는 하루를 다른 일에 쓰지 말고 봄 농사를 점검하면서 동서로 돌아다니라는 권고를 한다. 다른 일이란 고을 원님이나 감무의 직을 맡은 관원들이 종종 무고한 백성 족치는 일, 혹독하게 세금을 거두는 일 등을 저질렀는데 이런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일 게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삼월 달 뻐꾸기 울면 이랑 보리 물결치고, 다른 일을 쓰지 말고 농사 점검 동서로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1345∼1405)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1388년 유배에서 풀려나 내부부령, 예문응교를 거쳐 우상시가 되었으며 1391년(공양왕 3) 좌대언이 되었던 인물이다. 이어 지신사에 올라 감사를 맡아보았으나 김진양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三月: 삼월. 彭城: 팽성. 경기도 소재. 布穀: 뻐꾸기의 이칭. 啼: 울다. 千畦: 많은 이랑. 麥浪: 보리 물결. 與雲齊: 그름과 더불어. // 使君使君: 나라의 명을 받은 사람(監務)을 친근하게 일컬음. 日: 하루. 用非: 사용하지 말라. 他事: 다른 일. 點檢: 점검하다. 春耕: 봄 농사. 東復西: 동과 서로 돌아다니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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