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19】

예나 이제나 국가의 안위는 튼튼한 외교에 있었음을 안다. 달가 포은은 덕망이 두터워 국내정치 및 사람을 적시적소에 쓰고, 사람 다루는 법이 능수능란했지만 외교에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수재였음을 알게 된다. 중국이면 중국, 일본이면 일본을 수없이 오가면서 외교의 역량을 폈다. 현실정치의 알찬 참여는 외교 역량에 있음을 보인다. 유세를 하느라 황금도 다 써 버리고, 돌아갈 생각에 흰머리만 생긴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奉使日本(봉사일본) / 포은 정몽주
유세에서 황금도 전부 써 버리고
돌아갈 생각에 흰 머리만 생기는데
큰 뜻에 나의 공명만 위함이 아니라네.
遊說黃金盡 思歸白髮生
유설황금진 사귀백발생
男兒四方志 不獨爲功名
남아사방지 불독위공명

세상을 경영하려는 남아의 큰 뜻이 있을진대(奉使日本)로 제목을 붙여 본 율시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고려 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유세하느라 황금도 다 써 버리고 / 돌아갈 생각에 흰머리만 생기는구나 // 세상을 경영하려는 남아의 큰 뜻이 있을진대 / 이는 다만 나의 공명만을 위함이 아니라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일본에 사신으로 와서]로 번역된다. 포은이 외교활동을 잘했다고 알려진다. 그만큼 외교와 학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포은이 섬나라 일본에 사신의 명을 받았다. 전구全句에서는 [섬나라에 봄기운은 감도는데(水國春光動) / 하늘 끝 나그네는 가지 못하네(天涯客未行) // 풀은 천 리에 이어져 푸르고(草連千里綠) / 달은 두 나라에 똑같이 밝네(月共兩鄕明)]라고 했다.

시인은 여러 사람과 환담하느라고 많이 애썼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유세를 하느라고 비축한 황금도 이제는 다 써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캄캄하여 흰머리만 생긴다고 했다. 국익을 위해 사신으로 나갔던 최고의 외교관이었지만 호주머니 사정을 이야기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자의 심회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큰 뜻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세상을 경영하려는 남아의 큰 뜻이 여기에 있으니 다만 나의 공명만을 위함이 아니라는 분명한 뜻을 밝히고 있다. 큰 생각을 갖는 문신이자 외교관임을 알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유세하며 황금 쓰고 흰 머리만 생겼구나. 세상 경영 큰 뜻있네 공명만을 위함이니’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로 고려 말의 학자다. 명나라와 왜국과의 외교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유능한 외교가로 높이 알려진다. 포은은 정도전에게 많은 영향을 주며 ‘마음을 같이한 벗(同心友)’의 맹세를 나누었으나 역사의 선택은 그들을 서로 칼끝을 겨누는 적으로 만들었다.

【한자와 어구】

遊說: 유세하다. 말하다. 黃金盡: 황금을 다 소진하다. 다 쓰다. 思歸: 돌아 갈 생각을 하다. 白髮生: 백발이 생기다. 백발이 성성하다. // 男兒: 남자 아이들. 四方志: 세상을 경영하려는 뜻. 어른이 되어 큰 뜻을 펴다. 不獨爲: 홀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功名: 공명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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