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8]

친우가 동래로 귀양을 가서 있는 처지에 요즈음으로 말하면 면회面會를 갔던 모양이다. 만리타향에서 귀양 온 자라는 핀잔 속에 사람 만나기조차 어려웠던 처지였으리니. 책이나 읽고 시나 지으며 세월을 낚고 있으렷다. 낮이면 조그마한 텃밭이라도 일구면서 달을 대하며 거문고를 타는 것도 하루의 일과는 되었을 것이다. 어찌 지금에도 종자기가 있다고 말하겠는가마는, 다만 마땅히 백아의 마음을 탈 뿐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中丞謫居東萊對月撫琴(정중승적거동래대월무금) 
/ 유항 한수

강가에 뜬 달이 거문고에 오르고
한 곡조 새 소리에 옛 뜻이 깊은데
지금에 마땅히 다만  백아의 마음이다.
半輪江月上瑤琴    一曲新聲古意深
반륜강월상요금    일곡신성고의심
豈謂如今有鍾子    只應彈盡伯牙心
기위여금유종자    지응탄진백아심

한 곡조 새로운 소리에 옛 뜻이 깊이가 있네(鄭中丞謫居東萊對月撫琴)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유항(柳巷) 한수(韓脩:1333~138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반 바퀴 강에서 뜬 달이 거문고 위에 오르니 / 한 곡조 새로운 소리에 옛 뜻이 깊이가 있네 // 어찌 지금에도 종자기가 있다고 말하겠는가마는 / 다만 마땅히 백아의 마음을 탈 뿐이라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정중승이 동래로 귀양을 가서 달을 대하며 거문고 타다]로 번역된다. 시인과 정중승과는 각별한 사이였음을 알게 한다. 고려사회는 현종 대를 거치면서 거란의 침입과 숭불정책으로 유학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고 관학인 국자감 교육도 부진했다. 이러한 불안한 시대에 시인의 절친한 친우 한 사람이 동래로 귀양을 떠났으렷다.

시인은 달이 두둥실 떠오르는 어느 날 밤 거문고를 타면서 동래에 귀양을 가 있는 정중승 친우를 생각했다. 반 바퀴쯤 돌던 달이 강에서 떠서 거문고 위에 살며시 비춰오니 한 곡조 새로운 소리에 옛 뜻의 깊이가 있다는 고사를 생각해냈다. 거문고를 잘 탄 백아와 그 소리를 잘 듣는 종자기에 대한 시상 주머니를 만지작거린 것이다.

자는 고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믿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보인다. 어찌 지금에도 종자기가 있다고 말하겠는가마는 다만 백아의 마음을 담아 정중하게 탈 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시인은 화자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친우여 자네가 종자기라는 마음으로 나는 백아의 마음을 담아 거문고를 타고 있네]라고 했을 것을.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거문고 위에 달 올라 한 곡조에 뜻이 깊네, 종자기 있겠는가만 백아 마음 탈뿐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유항(柳巷) 한수(韓脩:1333~1384)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문재가 뛰어나 1347년(충목왕 3) 15세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다. 특히 필체가 뛰어나서 알려진 인물이다. 충정왕 때 정방의 필도치에 임명되었으며, 왕이 왕위를 내놓고 강화로 쫓겨날 때에 시종해 갔다. 

【한자와 어구】
中丞: 관직명. 半輪: 반 바퀴. 江月: 강에서 뜬 달. 上瑤琴: 거문고 위에 비치다. 一曲: 한 곡조. 新聲: 새로운 소리. 古意深: 옛 뜻이 깊이가 있다. // 豈謂: 어찌 ~이라 이르랴. 如今: 이제와 같이. 有鍾子: 종자기가 있다.  只應: 다만 마땅히. 彈盡: 다 타다. 伯牙心: 백아의 마음. 거문고를 장 탄 사람.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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