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첫 번째 사례: 도로변이나 마을 공터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다. 하지만 누구도 주우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자리 창출로 돈을 받고 쓰레기 줍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저 쓰레기를 주우면 일거리가 줄어서 새 일거리 창출에 방해가 된다”라고 말이다.

두 번째 사례: 어려운 이웃을 자연스럽게 돕던 봉사정신이 사라졌다. 모든 일(봉사)에 돈을 지급하니까 아름답고 순수한 봉사정신이 퇴색해졌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금전을 바라게 됐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냥 하겠다는 정신이 없어지고 있다.

모 노인정에서 있었던 사례다. 요즘 노인정에는 중식을 담당하는 도우미제도가 있다. 주3일(월 수 금)하고 27만 원의 사례금을 복지차원으로 행정당국에서 지급한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노인정에서는 평소 도우미제도가 없었을 때는 점심때가 되면 특히 여자회원들이 수고스럽게도 손수 점심을 마련해 노인정 전체 이용자들에게 좋은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돈을 받고 일하는 도우미가 있는데 왜 우리가 하느냐”라며 손도 까딱 안 한다고 가만히 앉아서 해주는 밥만 먹고 있다고 한다. 앉아서 대접만 받겠다는 의도다. 

청소도 그렇다. 노인정 주변을 청소하는 청소도우미 제도가 있어 쓰레기도 줍고 잡풀(여름)도 뽑고 겨울에는 눈도 치우면서 노인정 뜨락을 깨끗이 하자는 차원에서 또한 일자리 창출의 하나로 운영되는 제도다. 그런데 이런 도우미가 있으니까 일반 노인 회원들이 이런 간단한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스스로 우리 주변을 깨끗이 하겠다는 자발적인 행동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금전만능시대를 맞이한 것 같다.

사회주의제도의 하나인 기획경제는 자유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비하여 시장 원리에 의하지 않고 공동생산 공동분배에 의거 경제생활이 이뤄지기 때문에 생산증가에 한계가 있다. 수요와 공급을 정해 놓고 똑같은 노력 제공으로 생산량만큼 분배하기 때문에 생산능률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무한경쟁에 중점을 둔 시장경제는 경쟁 그 자체가 생산량의 증가를 가져온다. 물론 빈익빈부익부는 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그 대가로 이윤이 창출되는 제도다. 사회주의제도에서 오랜 생활을 한 사람은 창의적이고 솔선하는 작업능력이 자유경제(시장경제)제도에서 일한 사람에 비해 많이 뒤진다. 

수년전 필자의 지인이 경험했다는 얘기가 흥미롭다. 그는 중국 교포 출신 청년을 데리고 일을 하는데 하루는 장작을 패라고 하니 힘이 좋고 젊었던 그는 장작을 다 패고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래서 “장작을 다 팼으면 왜 쌓아놓지 않느냐?”고 했더니 “장작을 패라고 했지 언제 쌓아놓으라고 했느냐”고 되묻더란다. 지인은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고 말았다고 한다.

또 한 번은 겨울에 눈이 와서 앞마당에 눈을 좀 쓸라고 했더니 앞마당만 쓸고 뒷마당과 옆에는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도 안 쓸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로봇처럼 지시하는 일만 했다고 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서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자발적이고 스스로 해야 할 봉사와 근로정신의 퇴색이 염려되는 시대다. 어떤 일이건 간에 일을 했으면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아서는 안 된다. 일감도 경중 완급을 가려서 수요조절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만약 이러한 일자리 창출 일감이 줄어들거나 없어졌을 때의 후유증에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돈이라는 게 없으면 없는 대로 절약해서 쓰면 감수할 수 있지만 주던 돈을 안 주면 그 불만은 엄청난 사건을 유발할 수도 있다. 문제는 양심을 기본으로 아주 불우한 경우의 꼭 일자리가 있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에게는 계속 일감을 주고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여유 있는 자는 탈락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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