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커피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9.28수복 때 미군이 들어오고 부터다. 물론 그 전에 대한제국 구한말  때 또는 그 이전에 극소수의 커피가 궁중을 중심으로 해서 외국의 대사관 등에 있었다고 하나 서민이 커피라는 음료를 대하게 된 것은 유엔군(미군)이 들어오고 부터다. 

필자가 커피를 처음 맛본 것은 1950년 10월경 레이숀이라고 해서 미군의 야전식량 속에 빵과 과자(비스킷) 껌 커피 설탕 분유 연유 등이 들어있었는데 미군들이 이 과자통을 우리에게 줬다. 처음에는 커피라는 것도 몰랐다. 1회용 봉지에 꼭 고약 같은 가루가 들었는데 그 맛이 쓰기만 해서 모두 버리고 분유와 설탕 연유 등은 맛이 있어 서로들 나눠먹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인구비례로 보아 커피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됐다. 수입량도 많아서 값으로 치면 수조원이 넘고 우리의 주식인 쌀값보다 더 많다고 하니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필자의 경우도 커피의 맛은 잘 모른다. 입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커피 성분에는 카페인이 있어 기분전환도 되고 구수하고 특수한 맛이 있어 한번 중독되면 계속 먹어야 하는 습성이 생긴다고 한다. 중추신경을 자극해 신경을 안정시켜 준다고도 하고 그 반대로 신경을 자극한다고도 한다. 

5~60년대는 물론 그 후 최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전국에 수많은 커피와 차(국산차)를 파는 다방이 많았으나 지금을 대도시를 위시해서 다방은 많이 줄고 커피전문점인 카페가 많아졌다. 군단위인 우리지역에도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고 있다. 

필자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손님을 접대한다든가 부득이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커피를 금한다. 특히 오후에 마시면 저녁에 잠자는데 지장이 있어 더욱 마시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간단한 식사를 하고도 의례히 커피를 마신다. 물론 일회용 종이컵에 설탕과 커피 프림이 들어간 커피다. 간혹 식당에 따라 감주나 기타 국산차를 주는 곳도 있으나 이는 흔치 않다. 커피가 주류를 이룬다. 

허긴 우리의 음식문화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5~60년대에 비해 쌀 소비가 절반으로 줄었다. 간식이 많아서도 그렇지만 음식문화가 그만큼 바뀐 것이다. 하루 세끼가 아니라 두끼 먹는 집도 늘고 외식 또한 많아졌다. 

간단한 한식에도 전식이 있고 후식이 있다. 전식이란 밥 먹기 전에 이것저것 먹는 것들로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쓰는 용어다. 요즘 몇몇 식당에서 제공하고 있다. 일식 회전문 식당의 스끼다시(전식)와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밥도 옛날엔 쌀밥이 최고라고 했는데 요즘은 잡곡밥이 더 인기를 끌고 값도 비싼 편이다. 

예전에 쌀이 부족해 잡곡을 주식으로 할 때 옥수수밥과 보리밥이 많았다. 옥수수를 맷돌에 갈거나 방아(디딜방아)에 찧어서 쌀처럼 밥을 해먹었다. 따뜻할 때는 그런대로 먹을 수 있으나 식으면 딱딱하게 굳어서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 숭늉 맛은 일품이었다. 오늘날의 옥수수차 맛 그대로였다. 식사 후 커피 대신 숭늉 한 대접이 얼마나 입을 개운하게 했던가. 

우리의 음식도 서구화가 많이 됐다. 대도시의 식사도 한식 이외에 양식을 하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또 요즘은 혼식(혼자 밥 먹는 자)이 많다. 이에 따른 식문화가 발달되고 있다. 이제 커피는 대중화가 된 음료가 됐다. 국산차는 설자리를 잃고 있다.

초겨울 싸늘한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하면 하루의 기분이 상쾌해질 것이다. 우리의 주식인 밥상이 점점 사라지고 양식이 안방을 차지하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러나 식사 후 숭늉 한잔도 그런대로 괜찮으니 커피에 너무 중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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