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일본은 우리보다 반세기 전에 신문명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쇄국정책과 당쟁에 휩싸여 있을 때 일본은 유럽 등에서 새로운 문명세계를 접하면서 국내를 개혁했다. 삼한시대나 삼국시대 때 일본은 백제로부터 한국의 문화(문명)를 받아들였던 후진국이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 우리를 앞지르기 시작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키고 몇 백 년 후에 다시 한국을 무력과 경제적으로 침략해 35년8개월 동안 통치했다.

우리나라는 역사 이래 약 6천여 년 동안 외적의 침입을 9백여 회 이상 받은 나라다. 그러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체면치레만 하다가 나라가 몇 번 망했다. 1950년에는 같은 민족끼리도 전쟁을 한 나라다. 물론 북에서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현대판 당쟁(정당 간의 이해관계)으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외교는 외교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민심은 민심대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백색국가 제외는 물론 수출품목허가제를 강화해서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맞서 우리는 정보공유인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다가 막상 종료시점에서 일시 보류한 상태다. 일본 측에서는 급할 게 없다는 표정이다. 우리가 얻은 것은 반일운동으로 일본상품 중 수입맥주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과 일본관광 여행자가 급격히 준 것 외에는 별로 없다.

일본은 집단주의면서도 개인주의다. 개인은 집단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인식이 일본의 고대사회부터 이어져왔다. 무사의 정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느 집단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서로 개인과 집단 간에 경쟁적으로 싸우다가도 나라와 나라 간의 분쟁이 나면 일치단결해서 먼저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다시 나라 안의 쟁점을 해결하는 나라다. 제2차 대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국토의 침략을 안 받은 나라다.

우리는 강제 한일합병 당시 국력이 분열되고 내정분쟁이 심해서 나라가 곪을 대로 곪아터진 것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몰락한 것이다. 당시의 세계정세로 보아 일본과 청나라(중국) 러시아 세 나라 중 어느 나라가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지 모르는 절박한 시점에서 일본한테 점령당한 것이다. 일본은 자기나라 국민은 1등 국민 한국인은 2등 국민 중국과 만주는 3등 국민이라 칭하면서 무시했다.

일본 통치는 처음에는 무력통치를 하다가 3.1운동 후부터는 문화적으로 교묘하게 움직였다. 한국의 사회적 제도의 하나였던 양반과 서민 천민제도를 갑오경장을 계기로 강력하게 실시해서 대다수 서민의 호평을 받았다. 서민들은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당장 양반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됐고 탐관오리(관리)의 폭정에서 해방이 됐다.

신문명의 일환으로 새 문물이 일본을 통해서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신학문이 들어와 학교가 세워지고 한국 고유의 교육제도인 성균관(향교) 국립교육이 쇠락했으며 사립학교인 서당(서원)이 설자리를 잃어갔다. 이때 신학문을 배운 사람들이 학자도 있고 예술인도 있다. 요즘 친일행적으로 낙인된 문화예술인 중 우리의 가곡이나 교가 동요 등 많은 작품들을 생산한 분들을 친일파라고 배척하고 있다. 심지어 교정의 교목도 베어내자고 하고 교가도 교체했다고 한다.

허나 나쁜 역사도 아픈 역사도 역사는 역사다. 신문화 도입 과정에서 나타난 순수예술성까지 친일 반일로 규정해 배척한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대중음악(전통가요)에서 일제시대 때 일본을 위해 노래를 했다고 친일인명사전에 들어있는 그들의 노래가 요즘도 TV를 타고 여전히 잘 나오고 있고 대중들이 호응하는 것을 보면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무조건 반일하는 것 보다는 우리가 더 열심히 노력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익혀서 일본을 보란 듯이 이길 수 있는 극일의 힘을 길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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